
지난 2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유희열 밴드 토이의 공연이 시작됐다. 7년 만이다. 그런데 이 공연 이상하다. 이적, 윤종신 등 함께 무대에 선 가수들은 오늘의 주인공을 놀리기 바쁘고, 유희열은 노래를 하다 자주 소리가 흔들렸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대놓고 웃어 젖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사자는 태연하다. “우리가 제일 빛났고, 남자라면 유희열밖에 몰랐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선동했다.
“당신은 나의 사춘기예요”“우리, 20년 동안 밤마다 상처 보듬어주던 사이잖아.” 공연에서 유희열이 말했듯이 노래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그가 택하고 만든 음악을 듣기 위해 모이는 이 특이한 팬덤의 시작은 라디오부터다. 1990년대부터 <유희열의 음악도시>와 <유희열의 올댓 뮤직>을 연출했던 문화방송(MBC) 남태정 피디는 “새벽 1시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끌어안고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유희열이었다”고 전한다. <유희열의 올댓 뮤직>은 새벽 시간 청취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지르는 노래를 청하거나 좀비처럼 잠 못 드는 이유를 캐물었다. 자정 지나 동작대교 밑에서 전화를 걸어서 노래를 부르거나 다짜고짜 “희열님, 당신은 나의 사춘기예요”라고 고백했던 전설적인 청취자들이 나온 것도 이때다. 특유의 야한 농담과 ‘루저 정신’을 격려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맡는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취향의 공동체’ 같은 팬덤을 형성했다.
“유희열, 그는 세상의 어떤 음악이라도 재미있는 방식으로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모든 활동은 음악에 대한 존경에서 나온다”는 것이 유희열과 함께 4년 동안 <라디오 천국>을 만들었던 한국방송(KBS) 윤성현 피디의 말이다. 유희열은 성공한 프로듀서 시스템의 원조로 꼽힌다. 자신의 음반을 직접 프로듀싱, 작사·작곡하고, 김장훈의 ‘난 남자다’(2001)부터 ‘윤하의 편한가봐’(2009)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대중음악가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노래를 잘 못 불러도 커다란 음악적 자부심을 가진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공연도 음반처럼 객원보컬들 중심으로 꾸며졌다.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토이 콘서트엔 성시경, 김동률, 이적, 윤종신, 권진아, 빈지노, 이수현(악동뮤지션) 등 스펙트럼도 다양한 14명의 객원보컬들이 참여했다.
몇달 전 7집 음반을 내고 이번 공연을 하기 전까지, 지난 7년 동안 사람들은 유희열을 방송에서 더 자주 봤다. 음악인으로, 음악 디제이로 유희열 이미지가 깊은 이들에겐 꽤 낯선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를 연출하는 에스비에스(SBS) 박성훈 피디는 그를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 간극이 가장 작은 연예인”이라고 말한다. “2013년 <케이팝스타3>을 앞두고 보아 대신 유희열을 심사위원으로 들이고 싶어서 만나기를 청했다. 유희열은 거절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은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목소리 하나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아니냐’는 말에 넘어왔다. 카메라 불이 켜졌을 때나 꺼졌을 때나 다르지 않은 그를 볼 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 박 피디의 전언이다.
“섹시하게, 센스있게, 음흉하게 말해주시오. 변태 같아도 웃어주시오. 선홍빛의 잇몸으로 미소지을 때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와도 모른 척하시오. 노예 유희열을 찬양하시오.” 지난 2월 ‘너 사용법’을 부른 가수 에디킴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진행자 유희열에게 헌정한 노래 ‘유희열 사용법’이다. 즉석에서 만들어 부른 노래지만 음악인이면서 방송인으로 활동해온 유희열 캐릭터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음악 노예’는 유희열이 많은 음악인들의 노래를 만들면서 얻은 별명이다.
“음악은 유희열에게 성스러운 영역 같다. 음악을 하기 위해 예능을 이용하는 것을 못 견디고 똑똑한 체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을 극도로 싫어한다.” <에스엔엘(SNL) 코리아5>에서 유희열을 기용했던 안상휘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유희열 사용법’이다. “음악은 호흡”이라며 여자 하이힐에 코를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실 때, “대중적으로 뜨고 싶다는 욕심이 들 때 이걸로 자신을 내리치면 음악적인 욕심이 사라진다”며 허리띠를 휘둘렀을 때(엠넷 <방송의 적>) 시청자들은 잠시 그가 음악을 이용해 예능을 하는 것인지, 예능을 이용해 음악을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유희열의 섹시하고, 센스있고, 음흉한 화법이 방송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렇게 20년을 해왔어요”“유희열, 오늘 또 분명히 울 거예요.” 공연 초반 유희열을 놀렸던 윤종신은 노래 중간 문득 “스무살 때 만나 마흔이 넘도록 우리, 음악 하면서 잘 살아왔구나” 하면서 본인이 울컥해버렸다. 유희열은 1992년 제4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 찾아갔던 동아기획 출신과도, 자주 소개해온 인디밴드들과도 사뭇 다른 길을 걸으며 음악을 해왔다. 유희열은 진행에서 음악에 대한 진지한 충성사 사이로 짓궂은 농담과 자학개그로 경쾌한 리듬을 주길 즐기는데 그동안 활동해온 맥락도 비슷했다.
한국방송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티브이엔에서 <꽃보다 청춘>을 만들며 여러해 유희열과 일해온 신효정 피디는 “7개의 토이 음반은 크게 보아 하나로 연결되는 점이 있다. 유희열의 연출가 기질로 봤을 땐 음악과 활동을 엮어도 커다란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신 피디는 “<꽃보다 청춘>을 촬영하러 페루에 갔을 땐 7집 음반을 완성하지 못했던 시점이라 주변 사람이 느끼는 예민함이 있었다. 그런데 페루에서 곡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아오면서는 홀가분하고 편안해 보였다”며 “7집을 두고 유희열답다, 아니다 이야기가 많지만 유희열 자신이 젊을 때 할 수 있는 음악이 따로 있고 지금 나이 때 음악은 따로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니 곡 작업이 풀린 게 아닌가 싶다”고 짐작한단다. 남태정 피디도 “유희열이 친숙한 사람들과 작업하기를 즐기는데 이번 7집은 3분의 2 이상 새로운 가수들이다. 대단히 고심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는 유희열 시즌 원이었다면 7집부터는 두번째 시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연에서 유희열은 이렇게 말했다. “잘되고 못되는 거,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20년이나 음악을 할 수 있었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방송 화면 갈무리, <한겨레> 자료사진
[관련 영상] 잉여싸롱/ 토이 유희열 7집 완전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