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4월8일 재혼한다고 발표한 찰스 왕세자(왼쪽)와 커밀러 파커 볼스를 바라보는 여론이 찬반 양론으로 갈리면서 이들의 결혼 합법성에서부터 찰스의 왕위 및 영국 국교회 수장 직위 계승 등을 둘러싼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사진은 이들 커플이 지난해 6월 한 행사장에서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법학자들 ‘세속 결혼식’ 합법성 싸고 논쟁
여왕 불참소식도 재혼 불만여론에 불붙여
왕위·영국 국교 수장직위계승 논란도 거세
찰스 영국 왕세자(56)와 35년 전부터 사귀어 온 연인 커밀라 파커 볼스(57)의 재혼이 ‘산 넘어 산’이다. 4월8일로 예정된 이들의 재혼에 대한 일반인들의 여론이 신통찮은 상태에서 재혼의 합법성을 두고 법학자들이 한판 논쟁을 벌이더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혼식 불참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찰스의 왕위와 영국 국교회 수장 직위 계승에 대한 반발도 커지면서 이들의 결혼식 텔레비전 생중계마저도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 여왕의 불참 논란=찰스의 어머니이자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달 22일 밝혔다. 여왕 관저인 버킹엄궁은 왕세자가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하는데, 여왕이 참석하면 조용히 치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왕세자의 아버지인 필립 공과 앤 공주 등 대부분의 왕실 인사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당장 여론은 ‘여왕이 커밀라를 좋아하지 않고 이들의 재혼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버킹엄궁은 지난달 10일 이들의 결혼 발표 때부터 “여왕이 이들의 재혼을 지지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여왕의 불참 발표는 다시 이들의 재혼을 불만스러워하는 여론에 불을 붙였다.
4월 결혼식 TV생중계 불투명
여왕의 불참에 대해 영국인들이 〈비비시 방송〉 인터넷 게시판에 띄운 반응 수백건을 살펴보면 세가지로 요약된다. 불참 지지 쪽은 대체로 재혼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영국 왕실과 영국민의 뜻을 저버린 왕세자의 결혼식에 당연히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불참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재혼에 찬성하는 사람들로, ‘아들의 결혼식에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결혼이라면 축복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왕이 가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 재혼의 합법성 논란=찰스 왕세자는 재혼을 발표하면서 ‘세속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이혼과 또 이혼한 사람들의 재혼에 부정적인데다 특히 왕세자의 이혼녀와의 결혼을 관습적으로 금지해 왔기 때문에 이들 커플은 종교식이 아닌 세속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부 법학자들이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영국은 종교 의식에 따르지 않는 결혼식을 허락하지 않다가 1836년 결혼법을 제정해 잉글랜드에 한해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예배당, 공원, 식당 등 지정된 세속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리고 결혼등록소에 신고를 하면 비종교식으로 올린다고 하더라도 합법성을 인정받도록 했다. 당시 결혼법은 ‘성공회를 옹호할 책임이 있는 왕실 인사는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세속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고 있었는데 1949년 결혼법이 개정되면서 삭제됐다. 단서 조항이 삭제돼 왕실의 세속 결혼에 대한 금지 여부가 명시돼 있지 않아, 일부에선 ‘관습적으로’ 왕실의 세속 결혼을 금지해야 된다고 보는 반면, 일부에선 ‘삭제는 금지의 폐지’라고 본다.
가족법 전문인 스티븐 크레트니 옥스퍼드대 교수 등 일부 법학자들은 왕세자의 세속 결혼식은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며, 합법적이기 위해서는 △결혼법을 다시 개정하거나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을 것을 요구했다. 거센 논란 끝에 결국 최고위 법관인 찰스 포커너 헌법부 장관이 이들의 세속 결혼식은 ‘합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긴 했지만, 반대하는 법학자들의 기세는 여전하다.
◇ 왕위 계승 논란=이들의 재혼에 대한 성공회의 부정적 태도와 영국인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찰스의 왕위 계승과 영국 국교회 수장 직위 계승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재혼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18살 이상 영국인 1313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1%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퇴임하면 손자인 윌리엄 왕자에게 곧바로 왕위를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찰스 왕세자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사람은 37%에 불과했다. 윌리엄 왕자 지지도가 찰스 왕세자 지지도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국교회 수장 직위 계승과 관련해서도 영국민의 49%가 ‘반대’ 의견을 밝혔으며, 37%만이 ‘찬성’했다.
“왕세자 왕위계승 지지” 37%뿐
이런 반발은 영연방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만찬가지다. 오스트레일리아 여론조사 기관 갤럭시 리서치가 지난달 28일 왕세자의 방문을 앞두고 400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9%가 찰스가 파커 볼스와 결혼하면 왕위를 윌리엄 왕자에게 넘겨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이어서 파커 볼스의 ‘왕비’ 계승에 대해서는 더욱 부정적이다. 이에 따라 영국 왕실은 파커 볼스가 결혼 뒤에는 ‘콘월 공작 부인’이라는 호칭을 쓰고, 찰스가 왕위를 계승할 경우 그가 ‘왕비’(퀸)라는 칭호 대신 ‘왕의 배우자’라는 칭호를 쓰도록 했다.
교회 결혼식마저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부된 이들의 재혼은 현재 텔레비전 생중계마저도 거부될 수 있는 상태다. 왕세자가 성공회 관습을 무시하고 이혼녀와 결혼하는 장면이 방영되면 국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엘리자베스 2세와 캔터베리 대주교가 생중계를 반대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가 전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1930년대 영국에서 텔레비전 시대가 열린 뒤 왕실 결혼식이 생중계되지 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된다. 1981년 찰스-다이애나 결혼식은 영국에선 2840만명이, 전세계적으론 8억명이 시청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