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부산 중학생 폭행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비슷한 과정이 되풀이된다. 언론의 대서특필→피해자의 참혹한 이미지 공개→분기탱천한 대중의 온라인 재판→형량 강화 국민청원 시작→정치권, 발 빠르게 편승하며 엄벌주의 입법 예고→시민들의 환영…. 거의 매번 똑같다.

그동안 국회는 특별법으로 땜질하며 엄벌주의를 강화해왔지만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이후인 2010년 아예 형법 뜯어고치기에 나섰다. 그 결과 유기징역 상한이 기존 25년에서 50년으로 무려 두 배가 늘어났다. 선진국 중 엄벌주의 성향이 강하고 사형제도가 적극적으로 유지되는 일본조차 2004년 형법 개정을 통해 기존 징역 상한 15~25년을 20~30년으로 올리는 데 그친 것에 비춰보면, 저게 얼마나 과격한 변화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즉, 이렇게 형량을 늘린 만큼 범죄가 감소하느냐는 것. 세계 각국의 형사정책 연구들은 대부분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처벌 강화의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하다.’ 대다수 범죄학·법학 전문가들이 엄벌주의에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0년 하계 학술대회에서 한국형사법학회가 출소자 2만9875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기징역 상한이 15년 이상 높아져도 재범 억제 효과는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 처벌과 범죄 억제 효과의 관련성이 낮다는 학계의 공통된 시각이 재확인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엄벌주의는 지지되지 못한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체포될 경우 몇 년 형을 받을지를 계산하여 범죄를 계획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잡히느냐 안 잡히느냐이지 잡히면 몇 년 형을 받을 것인지가 아니다. 성년과 미성년을 막론한 대다수 범죄자에게 공통된 심리다.

최근 거세게 일어나는 소년법 개정·폐지 요구는 2010년 형법 개정으로 극단화된 엄벌주의의 청소년 판으로, 이를테면 ‘엄벌주의의 낙수효과’라 할 만하다. 물론 그 흐름에 반대하며 소년법의 취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성년에게 관대한 처벌을 하거나 처벌을 면제해주어야 하는 이유는, 성인 범죄자와 달리 교화할 수 있으며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국가가 구성원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국친사상’(parens patriae)에 기반한다.

여기서 미묘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미성년자 범죄를 성인에 버금가게 처벌해야 한다면 미성년자의 책임능력을 성인에 준하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혼인, 선거 등 각종 법률적·사회적 권리 역시 성인과 동등하게 인정해야 일관적이다. 반면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는 역방향의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 청소년 시민권을 요구하면서 청소년을 일방적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국친사상을 수용한다면 아무래도 그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외 없는 엄벌주의’는 맹목적이고, ‘청소년만 예외인 엄벌주의’는 위선적이다.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이유가 ‘연민’이나 ‘온정’ 또는 ‘어버이 국가의 관용’ 따위여선 곤란하다. 우리가 동료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려면 시민적 권리, 사회적 정당성 및 실효성 같은 명석판명한 가치에 근거해야 한다.

엄벌주의는 더 자극적인 사례와 더 순수한 피해자를 찾아내는 광기 어린 게임의 구호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범죄의 감소와 사회의 진보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공동체의 동력을 소진시켜버린다. 엄벌주의의 승리는 곧 사회의 실패, 우리 모두의 실패인 것이다. 그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최소한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똑 부러지는 답은 없다. 하지만 실마리를 잡기 위해 분노의 행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엄벌주의는 그저 무지한 대중의 감정 분출일 뿐일까?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범죄의 법정 형량이 낮다는 사실보다 같은 죄를 짓고도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일에 훨씬 더 분노한다. 사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례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의 이 거대한 에너지가 처벌의 엄격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법의 공정함에 대한 요구라면 어쩔 것인가. 우리가 진짜 바라던 건 더 강한 처벌이 아니라 더 정확하고 더 정의로운 처벌이라면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