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6골을 내주고 대패를 당했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냈다는 성취감에 모두들 환하게 미소지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성인 국제대회 본선에서 역사적인 첫골을 터뜨렸을 때는 서로 모여 노 젓는 골세리머니를 펼치며 좋아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출신 후기인상파 화가 고갱이 사랑했던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 국제축구연맹 랭킹 138위로 축구에 관한 한 변방 중 변방인 이 나라가 2013 브라질 컨페더레이션스컵(컨페드컵)에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월드컵 개최 1년 전 열리는 컨페드컵에는 대륙별 챔피언이 참가한다.
18일 새벽(한국시각) 브라질의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대회 사흘째 B조 조별리그 1차전. 오세아니아주 대표로 출전한 타히티는 아프리카 챔피언 나이지리아와 맞서 1-6으로 졌다. 그러나 0-3으로 뒤지던 후반 9분, 조너선 테하우(25)가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슛으로 한골을 넣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뒤 프랑스 출신 에디 에타에타 타히티 감독은 “나의 선수들의 경기력에 자부심을 느낀다. 국가가 연주될 때는 눈물이 흘렀다. 보통 월드컵 등 주요 국제축구대회를 텔레비전을 통해 봐야 했지만, 오늘은 우리 선수들이 주인공이었고, 빛나는 역할을 수행해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이어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우리를 지지해준 브라질 팬들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스티븐 케시 나이지리아 감독은 “타히티 선수들은 축구를 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축하한다. 그들은 사자처럼 뛰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타히티는 이번 컨페드컵에 출전한 8개 팀 중 전력이 제일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 선수라고는 단 한명밖에 없다. 그리스 판트라키코스에서 뛰는 마라마 바이뤼아(33).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자국 아마추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거나 비치사커 출신 선수들로 알려져 있다.
타히티는 2012 오세아니아축구연맹 네이션스컵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행운도 따랐다. 지난해 6월 솔로몬제도에서 열린 이 대회 4강전에서 최강 뉴질랜드(국제축구연맹 랭킹 57위)가 뉴칼레도니아(97위)한테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 바람에 4강전에서 솔로몬제도(166위)를 꺾고 결승에 오른 타히티는 비교적 편한 상대인 뉴칼레도니아마저 제압하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8개 나라가 출전한 대회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는 탈락했지만, 처음 맛보는 쾌거였다.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20살 이하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타히티는 이번 컨페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 랭킹 31위 강호인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세계 1위인 스페인, 19위인 남미 챔피언 우루과이 등 강호들과 B조에 편성돼 단 1승을 올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회 전에는 ‘과연 한골이라도 넣을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이날 한골을 넣고 선전하자 타히티 축구협회는 트위터에 “우리는 챔피언!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바이뤼아는 “타히티 축구를 세계에 보여주게 돼 기쁘다. 이 대회에 출전한 자체가 승리”라고 좋아했다.
타히티는 이날 나이지리아와 맞서 공점유율은 41%로 약간 뒤졌고, 전체 슈팅 10개에 유효슈팅 5개를 기록하며 위협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반면 나이지리아는 전체 슈팅 17개를 기록했고, 9개의 유효슈팅 중 6개를 성공시키는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타히티는 21일(새벽 4시) 스페인, 24일(새벽 4시) 우루과이와 조별리그를 치른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