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의 잘못이 아니야! 편히 쉬시게” “중대재해처벌법 개정해서 더이상 죽지 않고 일하는 사회를 만듭시다” “한창 피어날 나이에 귀한 생명이 희생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던 게 기억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16년 5월28일 오후 5시께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김군(당시 19살)이 목숨을 잃었다. 5년이 지난 28일, 시민들은 김군을 기억하며 사고가 발생한 ‘9-4 승강장’을 찾았다.
김아무개(60)씨는 근처에 살아 구의역에 자주 온다고 했지만, 이날은 컵라면과 일회용 젓가락을 두 손에 들고 9-4 승강장을 찾았다. 김씨는 김군이 사고를 당한 ‘5년 전 오늘’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집 근처 역에서 아들 또래의 청년이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김씨는 스크린도어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잠시 묵념을 한 뒤, 컵라면을 놓아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김군의 가방에서 뜯지도 못한 컵라면이 발견됐다는데, 김군이 이거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년 전 9-4 승강장에는 컵라면과 생수,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5년이 지났지만 이날 스크린도어 아래에는 김씨가 놓아둔 컵라면 외에도 또다른 컵라면과 생수, 국화꽃들이 놓여있었다.

‘추모의 벽’ 역할을 하는 9-4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김군을 잊지 않고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더 좋은 세상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동자들은 명복을 누리러 출근하지 않는다. 명복은 없다. 사람 목숨 세려고 숫자를 배운 게 아니고…” 등의 글이 쓰인 수많은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를 덮었다.
지난달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이선호씨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친구·동료들도 연대와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매일 명복을 빌고 추모를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매일 명복을 빌고 추모하겠습니다. 늦었지만 함께하겠습니다. -선호친구-” “이렇게나 큰 비극인 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선호친구-” “너의 잘못이 아니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 이러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게. -고 김용균 동료-”
2호선 지하철은 9-4 승강장을 수시로 지나쳤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의 벽에 적힌 포스트잇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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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