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서울서부지검이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를 하는 도중에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간부를 통해 수사팀에 한화그룹의 전 재무책임자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내용의 ‘수사 지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선일보>가 17일 보도했다. 검찰청법(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구체적 사건을 지휘·감독할 수 있어,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장관은 위법적으로 수사를 지휘한 셈이 된다. 검찰청법 8조는 검찰의 수사 독립을 위해 마련한 조항이다.
<조선일보>를 보면, 지난달 법무부 간부가 서부지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법무부 장관의 뜻”이라며 한화그룹 전 재무책임자(CFO) 홍동옥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말라는 내용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이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간부로부터 이 내용을 보고받은 남기춘 당시 서부지검장은 “수사 지휘를 하려면 검찰총장을 통해 서면으로 하라”며 장관 지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부지검은 당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위장계열사의 채무 3500억원을 그룹 계열사들에 지급보증하게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홍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서부지검은 지난해 12월 홍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서부지법에서 기각됐다.
남 지검장이 수사지휘를 거부한 뒤 서부지검은 지난달 20일 홍씨를 비롯한 한화그룹 전·현직 임직원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남 지검장은 그 직후인 지난달 28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발표되기 전 돌연 사표를 던지고 검찰을 떠났다. 당시 그는 왜 사표를 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 장관의 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는지에 대해 남 전 지검장은 “검찰을 떠난 사람이 말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런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수의 검찰 고위 간부들은 “사실상 장관의 수사 지휘가 있었고, 남 전 지검장이 거부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장관이 법무부 간부를 통해 수사팀에 수사 지휘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e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