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 치료와 건강 증진에서 이제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수단이 바로 약이다. 감염병 등 각종 질병으로 죽어가던 환자를 살려내던 시절에 약은 기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약의 오용과 남용을 넘어서, 제약회사가 약을 팔기 위해 ‘없는 병’도 만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약을 둘러싼 이런 논란을 다룬 책이 최근 출간됐다. 진보 성향의 약사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가 펴낸 <식후 30분에 읽으세요>라는 제목의 책이 그것이다. 약사도 잘 모르는 약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내용을 중심으로 잘못 알려진 약에 대한 상식과 제대로 된 약 사용법을 알아본다.

■ 피곤은 간 때문인가? 한 축구 스타 부자가 약 광고에서 부른 노래가 널리 알려지면서, 웬만한 사람들은 피곤은 간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진실은 이와는 다르다. 실제 피로나 피곤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질병으로는 당뇨나 갑상선 질환을 들 수 있고, 영양부족이나 빈혈, 스트레스 등도 중요한 이유다. 이와 함께 당연히 과다한 업무가 피로의 주된 원인이며 수면 부족도 빼어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 때문에 피곤하다고 느끼면 우선 충분히 쉬어야 한다. 피로 회복을 위해 약을 먼저 찾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광고에 나온 이 약의 효과는 어떨까? 피로회복제처럼 알려진 이 약의 주된 성분은 우루소데옥시콜린산이다. 이는 담즙 분비를 촉진하는데, 담즙은 소화액을 분비해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사실은 소화제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피로회복제로 많이 팔리는 에너지 드링크에 거의 모두 포함된 성분은 카페인이다. 카페인은 피로의 일반적인 증상인 졸림, 나른함, 활력 저하 등에서 깨어나게 해 피로를 잊게 만든다. 피로를 잠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이런 드링크를 많이 마시면 수면 부족 등을 일으켜 더 피로해지고, 중독 증상으로 피로를 비롯해 두통, 불안, 가벼운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 행복해지는 약은 있는가? ‘마음의 감기’라고도 부르는 우울증은 약으로 치료될까? 감기약도 있기는 하지만 감기가 대부분 약이 아닌 충분한 휴식, 안정, 수분 섭취로 좋아지는 것처럼, 가벼운 우울증도 약보다는 운동, 기분전환, 가족과 친구의 도움이 더 중요하다. 물론 만성이 됐거나 심한 경우에는 의료진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울증 약은 미국 등에서는 ‘해피 드러그’로 불리면서 전세계적으로 약을 먹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우울증 약은 아주 소수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으며, 약 사용 초기에는 때때로 자살 충동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약에만 의존하다가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만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행복은 약이 아니라 주변의 사랑과 관심, 배려에서 나온다.

■ 공부 잘하는 약?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약 한알 먹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봤음직하다. 실제 한때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런 약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금도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약은 공부 잘하는 약이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하는 약이다. 이 질병은 충동성, 주의력 산만, 과잉 행동 등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며, 아직까지는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문제는 이 장애의 치료제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심장 및 혈관질환을 일으켜 숨진 사례도 적지 않으며, 자살 충동, 우울증, 성장 지연과 같은 부작용도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이 염려된다며 약품 사용에 신중할 것을 가장 강하게 알리는 경고를 약의 포장지에 붙이도록 했다. 아이가 산만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원인도 찾아보지 않고, 약부터 찾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건강 및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