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은 없고 오물을 커다란 요강에 임시로 저장 중인데, 요강이 이제 꽉 찼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탈핵>에서 원자력발전소(원전)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분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사정을 빗댄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에서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부른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량은 총 1만3069t에 이른다. 전체 저장 용량의 71.4%가 차 버린 셈이다. 예상 포화 시점을 보면, 국내에서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원전이 2016년으로 가장 빠르다. 가장 늦은 신월성 원전도 2022년에 포화 상태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원전 23기에선 해마다 750t씩 사용후 핵연료가 나온다. 연소된 핵연료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뿜어내는 위험물질이 된다. 세슘과 플루토늄, 크세논(제논) 등과 같은 인체에 해로운 방사성물질이 새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원자로에서 막 꺼낸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은 1m 거리에서 17초만 인체에 노출되더라도, 한달 안에 예외없이 사망에 이른다.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이 인체에 해롭지 않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는 최소한 10만년쯤 걸린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영구처분에 대한 기술적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산업부는 이달 중으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을 확정하면서 향후 원전 정책에 대한 방침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앞으로는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방안도 원전 정책을 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방사능 농도가 높은 ‘위험한 쓰레기’를 처분할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무작정 발전소만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경주/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수조에는 폐연료봉…바깥엔 콘크리트 저장고 300개가 빼곡핵폐기물 어디로
르포 / 월성 원전 1호기 가보니
“자자… (나눠드린) 노란색 겉옷과 헬멧을 반드시 착용하셔야 합니다.”
지난 11월22일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 원전 1호기의 연료 건물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방사능관리구역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었다. 출입구는 지문 인식을 거쳐야 통과할 수 있었다. 직원용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팔목을 덮는 긴 장갑도 착용했다. 바짓단을 접어 올려 양말을 덧신었고 신발도 갈아 신었다.
안내를 맡은 직원들은 “관리구역 안에서 사용된 장갑·양말 등도 방사선 오염이 확인되면 특별하게 버려져야 하는 방사성폐기물이 된다”고 말했다. 가슴에 ‘삐삐’(무선호출기) 모양의 자동선량계까지 부착하고 나니 정체 모를 긴장감이 스멀스멀 몸속을 파고든다. 이 기기는 방사선 피폭량을 측정하는 기기다. 관리구역 출입 때는 휴대하는 것이 필수다. 자동선량계에는 0.000밀리시버트(m㏜)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는 1밀리시버트다.
과거에는 출입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사우나시설도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방사선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구역을 이동할 때마다 출입자들은 손발오염감지기와 전신오염감지기를 거치도록 돼 있다. “깨끗합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와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 수심 8m·고요한 물속에 잠긴 시한폭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원자로 건물에서 핵분열에 쓰이고 난 폐연료봉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이곳까지 옮겨집니다.” 월성 원전본부 서경석 차장(홍보팀)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사용후 핵연료의 습식저장소(수조)다. 약 200평 남짓 되는 이 공간은 수심이 깊은 수영장을 떠올리게 했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중수로형 원전이다. 국내 원전 23기 가운데 대부분은 경수로형이지만 월성 1~4호기만 중수로형이다. 5년가량 쓰이는 경수로 연료와 달리, 중수로에서는 10개월쯤 연소되면 버려진다. 천연우라늄을 쓰는 중수로는 원전 가동 중에도 매일매일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원전으로는 4기밖에 안 되지만 중수로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의 양(연간 400t)이 경수로 원전 전체(350t)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년 전인 지난해 11월20일 설계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를 두고선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월성 1호기가 다른 경수로 원전에 견줘 사용후 핵연료를 다섯배 더 많이 배출하는 만큼 더는 발전소를 돌리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조에선 정적이 흘렀다. 철제 난간에 서서 아래쪽을 들여다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핵연료 다발들이 촘촘히 물속에 잠겨 있다. 길이 49.5㎝, 지름 10.2㎝의 핵연료 한 다발은 폐연료봉 37개의 묶음이다. 무게는 약 24㎏으로 꽤 묵직하다. 수조에 들어오기 전 기자는 실물 모형을 가볍게 들어올리려다 낭패를 보기도 했다.
핵연료는 물속에서 최소 6년 이상 머무르면서 열을 식힌다. 물(붕산수)은 냉각재이자, 방사선이 외부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물속에는 이런 핵연료 다발을 24개씩 담은 보관용기(트레이)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하루에 15다발, 매주 110다발이 이곳에 버려진다.
수조의 핵연료는 코발트색에 가까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연료봉에서 나오는 방사선 입자가 물속에서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려는 성질을 보이면서 내는 빛깔이다. 이를 직원들은 ‘체렌코프(러시아 물리학자)의 빛’으로 부른다. 고요한 물속의 우라늄 덩어리들이 아직 왕성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수심은 약 7.5m로, 최상단에 핵연료가 있어도 방사선이 일정량 이상 나오지 못하도록 설계된 높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수조의 위험성이 일반인에게 각인된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계기가 됐다. 당시 지진 사고로 후쿠시마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 있던 냉각수가 바닥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물 밖으로 나온 폐연료봉들은 대기로 방사능을 유출할 뿐 아니라, 엄청난 열을 뿜어내면서 화재와 수소 폭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변해 있었다.
월성 1호기의 주제어실에는 핵연료 한 다발 구입비가 480만원, 사용후 핵연료 관리부담금은 그 갑절을 훨씬 웃도는 1320만원(한 다발 기준)이라고 쓰여 있다. 해마다 5400다발이 새로 나오며, 이에 따른 연간 관리부담금은 무려 713억원에 이른다. 사후처리 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의 경제성도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떠올랐다.
■ 건물 바깥 콘크리트 저장소도 포화 임박 핵연료가 영구 처분되기 전까지 임시 저장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물속(수조)에 저장되거나 금속·콘크리트로 만든 건식 시설물에 보관된다. 우리나라에서 경수로형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는 수조에서만 관리되고 있다. 금속·콘크리트 등의 건식 저장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월성 원전이 유일하다. 국내에는 아직 건설된 적이 없지만 일부 나라들에선 원전 사업자로부터 핵폐기물을 인수받아 중·장기로 관리하는 중간 저장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습식 혹은 건식 저장 방식으로 보관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자칫 자연재해나 테러 등의 위험에 붕괴되기 쉬운 수조보다는 건식 시설이 좀더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월성 원전 1~4호기 연료건물 안에 있는 수조에서 열을 식힌 사용후 핵연료는 매일 일정량씩 건물 바깥의 건식 저장소로 옮겨진다. 수조가 핵연료로 가득 차기 전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식 저장소는 수조가 있는 연료 건물에서 자동차로 1~2분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산중턱 바로 밑이다. 지붕이 있는 건축 구조물을 떠올렸던 기자가 맞닥뜨린 풍경은 다소 의외였다. 높이 6.5m, 두께 1m의 콘크리트 사일로(저장고·캐니스터) 300개가 그대로 지상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일로 한 개에는 사용후 핵연료가 540다발씩 들어 있다. 1992년 4월부터 채워지기 시작한 콘크리트 사일로는 이미 2010년에 포화된 상태였다.
그 너머에는 마치 자그마한 아파트 단지 모양을 한 모듈형 저장고(맥스터)가 서 있었다. 모두 7개인 모듈 1개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2만4000다발이나 된다.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더 조밀하게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수조에서 꺼내진 핵연료들은 이날도 분주하게 맥스터로 옮겨지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을 이용한 운반 작업을 마무리하던 전찬동 월성 원전본부 2발전소 연료팀장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수조에 있던 핵연료 다발들이 이곳으로 옮겨진다”고 말했다.
물속에서 6년 이상 열기를 식혔지만 사용후 핵연료의 운반은 고도의 주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연료의 이력에 따라 운반 대상으로 선정된 핵연료는 60다발씩 바스켓에 장전해야 한다. 하루 물량은 바스켓 두 개 분량이다. 뚜껑을 용접하는 일까지가 모두 물속에서 이루어진다. 행여 방사능이 대기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더운 공기를 불어넣어서 바스켓을 완전히 건조시킨 뒤 운반 차량인 트레일러에 싣는다. 건식 저장소까지 옮겨지면 마지막으로 크레인을 활용해 전용 실린더에 집어넣으면 ‘이사’가 완료된다. 맥스터에 안착되는 마지막 단계까지 전 과정은 카메라로 녹화되며 최종 봉인 작업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담당한다.
2018년 3월이 되면 모듈형 저장고도 꽉 차게 된다. 월성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게 되는 셈이다. 전찬동 연료팀장은 그 자리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이날 현재 포화 비중을 계산해준다. 그에게 이런 계산은 이미 익숙한 업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전 팀장은 “수조 및 건식 시설을 다 합쳐서 75.2%(월성 1~4호기)가 찼다. 포화 시점에 이르더라도 수조에 좀더 채울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 길 없는 핵폐기물들은 기자가 찾은 이날도 하릴없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경주/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