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양국이 1일(미국 현지시각 30일) 1423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사업을 큰 틀에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부과한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지난해 11월 합의한 대미 전략투자금 2000억달러 가운데 70% 정도 투자처가 정해졌다. 다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머지 투자금 500억달러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이후 사업별 세부 협상 과정에서 힘겨루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투자도 없다는 원칙을 거듭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알래스카주 상원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양국이 서면 합의한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발전(223억달러 추진) △대형 원전 8기 건설(1200억달러 포괄적 합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검토 착수) 등 3건의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22일 우리 정부가 동일한 내용의 양국 합의안을 국회에 보고하고 9일 만이다.
양국은 ‘한국과 미국, 역사적인 전략적 투자 프로젝트 발표’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에너지를 포함한 전략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오늘 발표된 계획은 무역 합의 이행에 대한 양국 정부 공동의 의지를 보여준다. 앞으로도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계속해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곧바로 신의 성실 원칙을 깬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내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도 추진하게 됐다”고 했고,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국이 투자할 돈이 “500억달러를 넘는다”고 덧붙였다. 양국이 이날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에는 없는 내용이다.
반면 협상을 주도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산업통상부에서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과 합의한 것은 공동 팩트시트에 있는 세 문장뿐”이라고 했다. △상업적 합리성 및 모든 국내법 요건 충족을 조건으로 프로젝트 검토에 착수(commence working)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될 경우 △한국업체 참여를 지원하고 △경제성이 확보되는 가격으로 LNG 구매계약 체결을 보장한다는 내용 외에 투자 여부 및 투자금에 대해서는 어떠한 합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미국은 이 부분을 국내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발표 뒤) 러트닉 장관에게 강하게 이의제기를 했고, ‘한국 우려를 이해한다.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응을 받았다”고 했다. 김 장관은 “상업적 합리성이 없으면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데 양국이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앞서 국익을 거론하며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사업만 한다”고 밝혔던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날 엑스(X)에 올린 글에서 공동 설명자료 영문 표현을 인용해 “미국이 발표한 대미 투자 사업 중 알래스카 LNG 사업은 상업성이 확인되고 대한민국 법 절차에 부합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워킹(working)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 지원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글에서도 “500억달러 규모의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한 공동 작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이 문제가 이미 합의한 텍사스 가스복합발전 프로젝트 등의 세부 협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동 설명자료에는 원전 건설 부지 역시 명시되지 않았는데,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날 오하이오·테네시·사우스캐롤라이나·켄터키를 일방적으로 찍어 거론했다.

대미 투자 상업적 합리성을 심사하는 국회는 이 문제를 해당 상임위원회와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협상 성과를 부각하면서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권칠승 정책위의장은 “한미간 치열한 협의를 통해 상업적 합리성을 토대로 국익을 지켜낸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권 의장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선 “당초 합의와 한미전략투자특별법에서 정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추진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간사인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한미전략투자특별법의 ‘국회 상임위 동의’ 조항을 인용하며 “상업적 합리성 여부를 기준으로 검토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썼다.
국민의힘은 미국보다는 우리 정부에 날을 세웠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9월22일 국회 대미 투자 보고에서 알래스카 LNG 사업은 추가 검토를 거쳐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발표를 사전에 인지하거나 협의·동의했는지 즉각 공개하라”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유영재 기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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