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4월, 래퍼 이센스(본명 강민호)가 구속됐다. 대마 흡연 혐의였다. 사이먼 도미닉과 슈프림팀으로 활동했던 이센스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려던 참이었다. ‘앨범은 이제 없는 일로 되는 건가?’ 한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미 만든 거니 내보내자.’ 그해 8월 한국 대중음악 사상 초유의 ‘옥중 앨범’ <디 애넥도트>가 발매됐다. 힘들었던 삶과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낸 앨범에 힙합 팬들과 평단은 환호했다. 국내 힙합 음반으론 드물게 2만5000장이나 팔려나갔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등 2관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한겨레·멜론·태림스코어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선 56위에 올랐다.
“감옥에서 반응을 전해 듣고, 그 와중에 좋았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요. 돌이켜보면 내 심리 상태가 약하고 흔들리고 뒤엉켜 있던 시절 열받는다는 생각만 하며 쏟아낸 앨범을 그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어요. 취해서 질질 짜거나 갑자기 화를 내는 식의 감정을 다들 한번쯤은 느껴봤기에 공감해주신 게 아닐까요.”
옥중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잘못을 되새기며 참회록 같은 일기를 적어나갔다. 제목에 끌려 붙잡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시작으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침에 종종 라디오도 들었는데, 힙합은 좀처럼 안 나왔다. 대신 트와이스의 ‘치어 업’에 푹 빠졌다. 설거지할 때 ‘치어 업’이 나오면 “교도관님, 좀만 더 크게 틀어주세요” 했다. “노래가 나와서 참 좋은데, 이걸 여기서 들으며 좋아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슬펐어요.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노래의 힘이 참 세구나 하는 걸 느꼈죠.”
“부담과 편견 벗어나려고 노력
무거움과 가벼움 적절하게 담아
변비 탈출한 듯 개운한 앨범”
그럴수록 힙합이 더욱 끌렸다. 가끔 텔레비전으로 보여주는 <개그콘서트>의 ‘말해 예스 오어 노’ 코너 속 비트를 들을 때면 랩이 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동생들이 외국 힙합 가사를 해석해 보낸 편지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비트와 함께 자동 재생됐다. “가사도 많이 썼는데, 웃긴 게 죄다 돈 얘기, 차 얘기였어요. 안에서 접한 외국 힙합 가사가 거의 그런 얘기이기도 했고, 하는 게 없으니 100% 상상에서 나온 가사인 거죠.”
2016년 10월, 1년6개월형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고향 경북 경산에 내려가 석달을 쉬고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쓴 가사 노트는 제쳐두었다. “삶에 밀착된 가사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에 창피한 것도 있어서요. 나중에 65살쯤 되면 혼자 읽고 불태워버리려고요.” 백지부터 다시 쓰는데, 문득 부담감이 밀려왔다. “1집 반응이 워낙 좋았던데다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 <디 애넥도트>보다 더 심화된 ‘죄와 벌’을 만들겠지 하는 편견이 싫었어요. 거기서 벗어나려고 더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한 지 2년6개월 만인 지난달 마침내 2집 <이방인>을 내놓았다. 1집 이후 4년 만이다. “특별한 방향을 정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쏟아냈다”는데, 유려한 랩은 여전하지만 의외로 돈 얘기가 많다. 그렇다고 단순한 돈 자랑은 아니다. “요새 뭐가 재밌어?/ 몰라, 돈이나 더 모아놓는 거지/ … / 어릴 땐 딱 지금처럼 살고 싶었는데/ 이제 다른 게 보여”(‘댄스’)처럼 돈에 대한 여러 생각을 풀어놓는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인 건 확실해요. 적은 것보다 많은 게 좋고, 있으면 편해지고…. 돈만큼 단순 명확한 것도 없거든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만들고 보니 거진 다 돈 얘기더라고요.”

이번 앨범 또한 반응이 뜨겁다. 벌써 2만장 가까이 팔렸다. 흑인음악 웹진 <리드머>는 올해 발매된 국내 힙합 앨범 중 최고 평점인 4점을 주며 “힙합신의 한가운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센스만이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자기 고백”이라고 호평했다. 이센스 스스로도 “1집은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저도 듣기 힘들지만, 이번 앨범은 무거움과 가벼움이 적절히 섞여 있어 듣기에 좋다. 1집보다 더 좋아하는 앨범”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디 애넥도트>가 만취해서 토한 느낌이었다면, <이방인>은 변비로 고생하다 시원하게 내보낸 기분이에요. 이제 개운해요. 앞으로 공연이든 새 앨범이든 편하고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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