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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수 새비지 럼바우 박사와 렉시그램으로 소통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코먼스
지난 2006년 수 새비지 럼바우 박사와 렉시그램으로 소통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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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정말 비인간 동물보다 특별한가?”

보노보 ‘칸지’의 삶은 그 자체가 질문이자 실험이었다. 칸지는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불과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것들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이라 불리던 칸지가 지난 18일 44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아이오와주 유인원 보호구역 ‘유인원의 인지 및 보전 이니셔티브’는 “칸지가 지난 18일 오후 44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이들은 “칸지는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행복해 보였고, 불편하거나 아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면서 “아침 내내 (조카) ‘테코’와 온실에서 놀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들은 칸지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칸지는 그동안 심장 질환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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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이라 불리던 칸지가 지난 18일 44살로 세상을 떠났다. 위키피디아코먼스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이라 불리던 칸지가 지난 18일 44살로 세상을 떠났다. 위키피디아코먼스

칸지의 죽음이 알려지자 해외 여러 매체는 칸지의 생애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와 ‘라이브사이언스’는 칸지가 참여했던 여러 연구와 실험들을 소개하며, 그와 함께 일했던 과학자들의 회고를 소개했다. 기사를 종합하면, 칸지는 지난 1980년 10월28일 미국 에모리대 ‘여키스 영장류 연구센터’에서 실험동물로 태어났다. 이후 1985년 여동생 ‘판바니샤’와 함께 조지아주립대 언어연구센터로 이주했다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유인원 보호구역에서 생활했다.

칸지가 처음 두각을 드러낸 것은 조지아대의 언어실험에서였다. 당시 연구자들은 유인원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칸지의 양어머니였던 ‘마타타’에게 렉시그램(비인간 영장류와 소통하도록 고안된 키보드) 사용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러나 마타타는 수업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마타타와 함께 ‘수업’에 오던 칸지가 렉시그램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10개의 단어를 금방 습득했고, 이후 348개의 단어를 더 익혔다. 이후엔 이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기호를 사용하는 능력 이외에도 영어로 주어지는 요청도 이해하고 반응할 줄 알았다. 칸지가 8살 때 실시한 연구에서는, 2살 아이와 함께 총 660개의 음성 지시를 받았는데 아이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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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그의 언어 능력뿐이 아니었다. 칸지는 돌을 쪼개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았고 불을 활용해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으며 말년에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익혀 최종 보스를 물리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수 새비지 럼바우 박사와 숲 속을 산책하던 칸지는 렉시그램을 사용해 ‘마시멜로’와 ‘불’을 요청했다. 이후 성냥과 마시멜로를 주자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마시멜로를 꽂아 구워 먹었다. 이는 인간이 불을 다루는 과정을 다룬 영화를 보고 스스로 배운 것이었다. 유튜브 갈무리
지난 2006년 수 새비지 럼바우 박사와 숲 속을 산책하던 칸지는 렉시그램을 사용해 ‘마시멜로’와 ‘불’을 요청했다. 이후 성냥과 마시멜로를 주자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마시멜로를 꽂아 구워 먹었다. 이는 인간이 불을 다루는 과정을 다룬 영화를 보고 스스로 배운 것이었다. 유튜브 갈무리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는 텍사스주립대 질 프러츠 박사는 칸지와의 인상 깊은 일화를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칸지가 새로운 야외 서식지에서 비버를 처음 만났을 때였어요. 칸지는 ‘물’과 ‘고릴라’라는 두 기호를 결합해 그 생물을 표현했습니다. ‘고릴라’는 그의 세계에서 무서운 것을 뜻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뒤로 비버를 보면 항상 ‘물 고릴라’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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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연구는 유인원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어떤 정보를 모르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개념을 ‘마음 이론’이라고 하는데, 보노보들에게 이런 인지 능력이 있는지 살핀 것이다. 지난달 3일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칸지와 동료들은 간식의 위치를 보지 못한 연구자에게 이를 손짓으로 알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실험동물로 태어나 평생을 유인원의 능력과 한계를 밝히는 연구를 위해 살았던 셈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