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남자’.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거리의 그라피티. 위키피디아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남자’.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거리의 그라피티. 위키피디아

지난달 말 모네의 아름다운 연못을 불법 쓰레기 투기 현장으로 바꿔 그린 뱅크시의 그림 ‘내게 모네를 보여줘’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12억원에 낙찰되었다는 뉴스가 났다. 머리에 무전기를 쓰고 바주카포를 들고 있는 ‘모나리자’와 같은 패러디다. 브렉시트와 관련하여 영국 하원 의원들을 침팬지로 묘사한 ‘위임된 의회’가 같은 경매에서 1년 전에 받은 147억원보다는 낮지만, 연꽃 대신 마트의 쇼핑카트와 교통·건축용 주황색 원뿔형 플라스틱이 떠 있는 것으로 바꾼 것에 불과한 낙서 같은 그림이 100억원이 넘는 값으로 팔렸다니 뉴스가 된 모양이다.

허기야 미술사에 나오는 모든 풍경과 인물을 쓰레기장과 침팬지로 바꾸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금수강산과 여의도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무릉도원과 서초동도 뭐가 다른가? “저항과 사회적 반대에 통찰력이 있는 뱅크시는 소비지상주의의 과잉소비와 환경 파괴 풍경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한 소더비 쪽 말은 맞지만, 소더비야말로 뱅크시가 풍자하는 소비지상주의의 전형이 아닌가? 그래서 2008년 소더비에서 16억원 정도로 낙찰된 ‘풍선과 소녀’를 뱅크시는 낙찰 직후 미리 설치한 장치로 파괴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림 경매’라는 그림에 그린 거창한 액자에 “정말 믿을 수 없어. 이렇게 쓰레기 같은 걸 사는 너희 같은 바보들이 있다니”라고 썼다. 미술 권력의 상징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전시하면서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에 공개해 미술관을 비웃었다. 이처럼 그에게 전통 예술은 풍자의 대상이다.

30년째 익명으로 활동

뱅크시가 누군지, 아무도 제대로 모른다. 그가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리는 그라피티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20년 이상 체포되지 않은 범죄자다. 영국 경찰은 그렇게도 무능한가? 범죄인 신상털기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인가? 한국에서도 그라피티는 불법낙서로 재물손괴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과 벌금 등에 처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령 2015년 홍승희는 욱일기를 배경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 아래 ‘사요나라 2015.11.14.’라고 쓴 그라피티로 1년6개월의 징역을 구형받았다. 그 뒤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150만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박근혜 탄핵 1주년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받았다. 그밖에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그라피티로 실형을 선고받아 예술이 범죄가 되었다.

반면 뱅크시는 150만원 벌금은커녕 그 만 배가 넘는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헬조선’이 아니라 영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다. 2003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보면, 뱅크시는 1973년 브리스틀 부근 시골에서 태어나 퇴학을 당하고 경범죄로 복역하기도 했으며, 14살에 그림을 시작해 1990년대에 브리스틀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다가 2000년께 런던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다. 인터뷰 당시의 모습은 지저분한 청바지와 티셔츠에 은색의 치아와 목걸이와 귀걸이를 한 남자로 묘사되었으나, 그런 정보가 그의 그림을 아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는 자유, 평화, 정의 같은 것들을 적어도 익명으로 부르짖을 정도의 배짱은 가지고 있다”는 그의 말 한마디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라피티를 하층 계급 ‘복수’의 한 형태 또는 개인이 더 강하고 더 훌륭한 적으로부터 권력과 영토와 영광을 빼앗을 수 있게 하는 게릴라전의 한 형태라고 특징지은 뱅크시의 작품은 반전, 반체제, 반소비주의,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반관료주의, 반폭력주의, 반자본주의, 반상업주의와 같이 기존 가치에 철저히 반하는 아나키즘, 니힐리즘, 실존주의, 생태주의 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주제를 다루어왔다. 특히 제복을 입은 남성 경찰들이 동성애자처럼 키스를 하고, 왕실 근위병이 총을 벽에 세워두고 눈치를 보면서 소변을 갈기고, 무장 군인들이 주위를 살피며 평화 마크를 그리는 그림 등으로 권력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다. 반면 평화 마크를 목에 걸고 아나키즘을 뜻하는 에이(A)자를 쓴 피켓을 든 쥐를 비롯한 수많은 쥐의 형상, 폭탄이 숨겨진 아이스크림을 들거나 제 몸보다 큰 폭탄을 껴안은 소녀를 비롯한 희생당하는 아이들, 돌이 아니라 꽃을 던지는 시위대, 핑크색 꽃 리본을 달고 날아가는 군용 헬리콥터, 쇼핑카트를 밀거나 원시적 무기로 쇼핑카트를 공격하는 원시인, 창문을 깨고 내던져지는 텔레비전을 그린다. 그는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자들처럼 법에 복종하는 것이 거대한 범죄라고 했다. 그의 작품이 공통적으로 비판하는 인간 조건의 구성요소는 탐욕, 가난, 위선, 권태, 절망, 부조리, 소외 등이다. 그 표현의 상징으로 쥐, 침팬지, 경찰, 군인, 어린이, 노인 등을 그린다. 지난 6월에는 ‘불타는 성조기’를 그렸다. 인종차별 문제를 아파트 위층의 수도관이 망가져 아래층으로 물이 새는 상황에 빗댄 그는 인종차별은 백인 문제라며 백인들이 고치지 않는다면 누군가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한 병원에 몰래 두고 간 그림 ‘영웅’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영웅으로 표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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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첫번째 주제는 평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주제는 평화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본 뱅크시 작품으로, 그가 2005년 8월에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서안 성벽에 그린 아홉 개의 그라피티가 대표 작품이다.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장벽 위,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 그 장벽이 뚫려 평화가 찾아오고, 그 장벽을 아이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아이들이 장벽을 뚫고 구멍을 판다. 그 너머로 천국의 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방탄조끼를 입은 비둘기 심장에 사격의 조준점이 맞추어져 있는 그림을 그는 그렸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지 100주년을 맞은 2017년 뱅크시는 그 그림들이 그려진 베들레헴 장벽 앞에 월드 오프 호텔을 조성하는 데에 자금을 지원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호텔에는 뱅크시 등이 설계한 방이 있으며, 침실은 각각 벽을 향하고 있고, 현대 미술관도 갖추고 있다. 뱅크시의 가장 최근 작품은 그 호텔 옆에서 그의 연극이 초연된 2017년 12월에 완성한 두 천사 그림으로, 장벽을 허물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신과 천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자치운동, 그린피스의 환경보호운동, 무기거래 반대 또는 무주택자나 노숙자를 위해 다수 작품을 기증했고, 2020년 8월에는 지중해에서 위험에 처한 난민을 구하기 위해 구조선에 사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21세기에 들어 뱅크시는 장미셸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 또는 앤디 워홀과 비교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개성의 무한 자유를 추구한다는 그들과,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길 위에서 그리는 뱅크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한국 미술계에는 뱅크시보다 바스키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민중미술도 걸개그림의 전통 탓인지, 뱅크시와 같은 재기발랄하고 부드러운 유머와 위트가 흘러넘치면서도 은근히 반체제를 도발하는 작품을 보기가 쉽지 않아 유감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일반인보다 더 권위주의나 관료주의나 상업주의나 물신주의 따위에 찌든 미술인들도 적지 않아 뱅크시 같은 정의의 미술 폭탄이 우리에게도 제발 터져주기를 학수고대한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프랑스 칼레에 뱅크시가 2015년에 그린 그라피티. 연합뉴스
프랑스 칼레에 뱅크시가 2015년에 그린 그라피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