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와 경주>.
<실크로드와 경주>.

4~6세기 신라 금관의 뿌리가 아프가니스탄이라면? 믿기지 않지만,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그 가능성을 높게 본다. 현지 시바르간의 북방유목민 고분 틸라테페에서 출토된 기원전후 시기의 금관이 역시 북방문화계통인 신라금관과 수목, 새 장식 등에서 비슷하면서도 시기는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신라 금관 양식이 직접 영향을 미쳤다는 6세기 일본 후지노키 고분 금관은 시바르간 금관을 통째로 빼어닮은 얼개다.

실크로드 연구자 민병훈(61)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이 펴낸 <실크로드와 경주>(통천문화사)는 이처럼 신라 고도 경주에 숱하게 전하는 서역·북방계 유물, 유적들의 계보를 처음 집대성한 책이다. 콧대 높은 괘릉 무인상, 경주 고분에서 나온 페르시아풍 보검과 유리그릇, 헤라클레스 사자 갑주를 어깨에 인 사천왕상 등 실크로드와 속깊은 인연을 맺은 신라 유산들이 사촌격인 서역, 중국 유물들과 함께 눈에 들어온다.

320쪽에 도판만 539장에 달하는 이 책은 20여년간 실크로드와 신라의 교류사를 천착해온 지은이의 연구성과를 갈무리한 역작이다. 신라 서역계 유물 유라시아적 계보를 꼼꼼히 꿰어 방대한 도판과 함께 정리한 점이 단연 돋보인다. 초원길을 통한 초기 동서교류, 금속공예의 교류, 불교 전래와 문화교류 등으로 갈래를 나누어, 각 영역 유물, 유적들의 변천과 신라에서 변용된 양상 등을 상세히 짚었다. 고대 지중해 문화의 영향을 받은 로만 글라스가 신라 고분 부장품으로 전래된 복잡한 경위와 극락왕생과 연화화생으로 대표되는 불교정토사상이 실크로드를 거쳐 신라예술에 영향을 미친 과정 등이 눈길을 끈다. 경주의 서역계 무인상은 중앙아시아 상업민족 소그드인의 왕래와 활동상을 반영한 자취이며, 사자 등이 결합된 서아시아 괴수 ‘그리핀’이 신라 예술의 유력한 도상이 됐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한반도 고대문화는 범 유라시아적 관점으로 바라봐야하며, 이런 맥락에서 외래문화가 전파돼 지역문화로 탈바꿈하는 ‘변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