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독학, 자수성가한 국가 지도자, 청렴과 개혁 추구, 퇴임 뒤 불거진 도덕성 의혹과 고독한 죽음….

23일 영욕의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1993년 총리직 사퇴 뒤 5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프랑스 총리와 닮았다. 가난한 우크라이나 이민가정 출신의 베레고부아 전 총리는 16살 때부터 금속노동자로 생계를 이으면서 독학했다. 2차 대전중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종전 뒤 프랑스 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베레고부아는 1981년 미테랑 사회당 당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데 이어 사회복지장관과 경제금융장관을 역임했으며, 1992년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경제난 극복과 부패 척결을 약속했다. 노 전 대통령이 노동운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하고 개혁 열망에 힘입어 최고 직위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

베레고부아는 고위 관료를 지내면서 파리에 아파트 한 채도 없을 정도로 ‘깨끗한 정치인’으로 통했다. 그러나 집권 1년 만인 1993년 총선에서 사회당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리에서 물러난 직후부터 엄청난 불행이 닥쳤다. 총선을 앞두고 기업인 친구에게 100만프랑(당시 환율로 약 1억4천만원)을 빌린 사실이 밝혀져 비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의 돈은 주택구입 자금이었으며 금세 되갚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돈을 빌려준 친구가 내부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베레고부아의 돈 거래는 선거국면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 참패에 이어 청렴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받은 그의 마지막 선택은 권총 자살이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