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 1.9 2.0 2.8 3.0…(로커 수치)
0.3 0.3 0.4 0.5 0.6 0.7…(벤딩 수치)
한 선수의 스케이트 날 수치가 복잡하다. 머릿속에 이런 숫자 조합을 넣고 살아야 하는 그는 더 혼란스럽다. 그러나 스케이트 날은 공장에서 찍혀 나온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적고 외우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운명이다.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팀의 장철(48) 장비 코치는 ‘날의 마스터’다. 차가운 스케이트 날이 그의 손가락을 거치면 가장 미끄럽고 잘 나가는 날로 살아난다. 그는 “날에 생명을 불어넣듯이 갈고 휜다”고 했다.
40.6~44.2㎝ 스케이트 날은 일직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높낮이도 다르고 휘어 있다. 그는 “날의 닿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날을 깎아준다. 또 코너를 돌 때 용이하게 하기 위해 날을 휜다”고 했다. 매우 미세한 작업이어서 로커와 벤딩 계기를 사용하지만, 최종 점검은 손끝과 눈의 감각을 사용한다. 편의를 위해 날에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어 둬 로커와 벤딩 계기의 수치를 재는 기준점으로 삼는다.
단거리 선수는 마찰력이 높더라도 힘 있게 치고 나가기를 원하고, 장거리 선수들은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마찰력이 낮도록 날을 많이 깎는 것을 원한다. 400m 트랙의 스피드스케이팅 회전 구간에서는 휘는 각을 작게 하지만, 111.2m 트랙에서 이뤄지는 쇼트트랙은 원의 반경이 작기 때문에 좀 더 구부려야 한다. 경기장마다 얼음의 강도가 달라 이런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선수들마다 특성이 다르니 장 코치가 신경 쓰는 변수는 더 늘어난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선수 22명의 취향에 맞추자면 소통도 잘해야 하고 이해심도 좋아야 한다. 그는 “선수가 선호하는 것과 내가 판단하는 것이 다를 때 먼저 권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대화를 많이 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냈을 때 날을 조정한다”고 했다.
날을 세우는 것도 정밀한 작업이다. 거친 숫돌로부터 아주 작은 입자의 연마돌까지 4~5단계로 나누어 날을 갈면 쇳조각들이 날 표면 양옆으로 밀린다. 그럼 옆면숫돌로 다듬어 날을 세운다. 이렇게 U자형으로 날이 서면 한쪽 날로 탈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데 쇳가루가 뭉친 날이어서 빙판의 머리카락이나 모래알 등 이물질과 만나면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장 코치는 “선수들은 먼지 크기의 흠집만 생겨도 이상을 알아낸다. 세운 날을 갈고 세우면서 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열심히 날을 갈아도 선수가 경기 뒤 날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아찔하다. “내가 날을 잘 못 갈았나?” 연습 주행 때 이상이 생기면 비상이다. 그는 “스케이트화 끈도 풀지 않은 채 단 5분 안에 날을 다시 세우는 응급처치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출발 총성이 울릴 때까지 80~100개의 부품이 채워진 가방을 메고 다니는 그는 선수보다 더 집중한다.
쇼트트랙 지도자 출신으로 3년여 동안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장비 코치를 맡아온 그는 “측정기의 도움을 받지만 숫돌로 밀고 손끝의 감각으로 체크하면서 날을 다듬는 것이 기본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 날 정비 기술을 갖춘 비밀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에 있다”고 했다.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감이 넘친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