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분만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상징하는 아기를 낳는 모습을 그린 화가 홍성담(57)씨의 그림 <골든타임>(사진을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예술이 아니라 특정 후보를 겨냥한 정치선동이며 법적 조처를 고려하겠다고 나섰고, 박 후보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반 시민 상당수는 그림 자체가 여성성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 작가는 왜 굳이 이런 민감한 그림을 어떤 의도에서 그린걸까? 서울 평화박물관 ‘유신의 초상’ 전시회에 출품한 문제의 그림 <골든타임>에 대해 작가는 “박근혜 후보는 결코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유신 그 자체라고 생각해 그린 그림이며,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신격화하는 경향에 대한 우려를 풍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는 그림을 그렸나?
“박근혜 후보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라선 것 자체가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박 후보가 정치인으로서의 특별한 철학과 사상을 보여주었다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검은 세력들이 그를 조종해 당선시켜 이익을 얻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미운 것이다.”
-출산 묘사가 불쾌감을 자극하는 과도한 표현이란 지적이 나온다.
“생명, 탄생, 출산은 내가 젊은 시절부터 중요하게 다뤄온 주제다. 80년대 광주항쟁 연작판화 시리즈와 2000년대 ‘신몽유도원도’ 등 여러 그림에서 출산 장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미술사에서도 고대 벽화부터 페미니즘 작가들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출산 장면을 그렸다. 이 그림은 그런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출산이 풍자의 코드로 바뀌어 나온 것이다.”
-박근혜 후보를 굳이 출산과 연결시킨 의도는 뭔가.
“지지자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광적인 지지는 많은 병폐를 낳기 마련이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 일부는 그를 신격화 하는 경향이 강하게 눈에 띄었다. 박정희 기념관에 모여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추대하는데, 이는 대선 직전 그의 딸인 박근혜 후보까지 반신반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후보 자신도 ‘나는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을 하며 스스로를 신비주의화,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신격화가 무엇인가? 절대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 아닌가? 그러면 지지자들은 자기 주체의식이 상실된다. 이런 행태들이 파시즘과 독재의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지 않았는가. 이런 신비주의화는 박근혜 자신은 물론 지지자들까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 후보를 분만대 위에 올려 그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것을 말하고, 신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지지로 바꾸라고 그의 지지자들을 꼬집는 풍자화를 그린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여성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기는 반응도 많다.
“한국 여성 중 대부분이 인생에서 한두 번 분만대에 올라 출산을 한다. 그게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말하는 것이 외려 여성 비하일 수 있다. 그리고 박 후보는 공인이고, 공인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다. 박 후보가 인터넷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내 그림을 보고 한 마디 해주면 좋겠다. 본인보다도 그 아래 지지자들이 과잉 충성해 강하게 비난하고 나오는 느낌이다.”
-이 그림이 예술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는데.
“아름다움에는 아름다운 미도 있고, 추악한 미도 있고, 괴상한 미도 있다. 그리고 미학적 차원에서 풍자의 미학이란 것도 있다. 풍자의 미학은 풍자 대상을 비틀고 꼬집고 조소함으로써 관람자들이 작품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코드를 스스로 해석하게 하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아닌가.”
-작가는 풍자라고 해도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여지는 있어 보인다.
“밥 먹고 배설하고 사랑하는 일상의 모든 것이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의도는 박 후보를 흠집내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스스로 선출한 정치인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고 예술가는 풍자를 통해 견제구를 날려줘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그런 의도로 그린 그림이라도 전시장에 걸려 작품으로 출품된 것이면 예술과 미학의 눈으로 분석 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을 그릴 수도 있는데 왜 박 후보만 풍자한 것인가.

“나는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다.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고통당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던 그 시절이 내게 트라우마로 강하게 남아있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갈등의 소산이다. 내 안에 있는 트라우마가 내 현실에서 갈등을 일으켜 그게 예술로 나오는 것이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이런 내 개인적 체험과 상관이 없으니까 예술적 갈등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하는 데 나는 그가 ‘유신 자체’라 본다. 박 후보는 유신 시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자임했고, 새마을운동을 주도했고 구국여성봉사단을 이끌었다.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출산 그림과 함께 전시한 <바리깡1>이란 그림이 있다. 의자 위에서 박 후보가 말춤을 추고 그 옆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바리깡(머리를 깎는 미용도구)을 들고 말춤을 추고, 그 뒤에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린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말춤을 따라 추는 그림이다. 얼마전 박 후보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인혁당 발언을 사과했다. 인혁당 사건이 뭔가. 도저한 죽음, 죄없는 죽음, 그 생명의 가치에 대한 사과여야 하지 않는가. 나는 그가 그날 하루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사과하고는 그날 오후에 바로 부산에 내려가 사람들과 말춤을 추더라. 그건 인간 존재와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그 날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 날이 내가 박근혜란 분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실망한 날이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