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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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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머리 희끗한 중장년층 발걸음 이어져
긍정적 내용 일색…‘쿠데타·독재’ 등 설명 없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 앞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20여m 높이의 육중한 6개의 기둥이 관람객을 맞는다. 기념관 건물을 전체적으로 떠받치는 기둥들인데 규모가 커 다소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건물 오른 편 한 켠에는 새마을 깃발 2개가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며 방문객을 맞는다.
기념관 개관 첫날인 22일 아침 박정희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아침 10시에 문을 연 기념관에는 10시30분까지 30여명이 입장한 상태였다. 1분에 한명 꼴이었다. 대체로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 방문객들이 주를 이뤘다.
윤정경(76·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씨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일반인으로서는 첫 방문객으로 기념관을 찾았다. 윤씨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의 첫번째 방문객이 되고 싶어 서둘러 나왔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공산화하는 것을 막고 경제건설에 도움을 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기념관 쪽이 제작해 나눠준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적힌 100쪽 짜리 책을 받아들고 흐뭇해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남성 (62·서울시 강남구)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기념관에 들어섰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비해 기념관 규모가 너무 작다. 아이들이 교육삼아 많이들 올 것이고 세계적 관광지가 될텐데 규모가 이렇게 작으면 어떡하냐”며 안타까워 했다.
건물 바깥의 화강암으로 된 계단 20여개를 올라서면 너른 나무 데크로 짠 고급스런 느낌의 마당이 나오고 이곳은 제1전시실 입구로 이어진다. 입구에는 이명박 대통령, 김황식 총리의 화환과 이희호 여사의 화환이 함께 놓여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방문객이 맞닥뜨리는 것은 약 4m 높이의 거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다.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 어느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편안한 모습의 박 전 대통령 사진이다. 일부 방문객은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박 전 대통령 사진 옆에는 ‘세계 석학들이 보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글귀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평가가 담긴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의 말도 담겨 있었다.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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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통해 정권 잡았다는 내용 대신 ‘5.16 혁명’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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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실 입구의 너른 홀 한쪽 벽면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역사가 연도별로 빼곡하게 정리돼 적혀 있다. 박 전 대통령 관련 역사 기록은 ‘1961.5.19.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 최고회의로 개칭’ 이라는 글귀로 시작했다. 그가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선언하고 무엇을 발표했는지 연도별, 월별로 적어 놓았는데 그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제1전시실에 발을 들이면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한 미화가 본격 시작한다. 기념관 쪽은 쿠데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전시물을 설치해 놓았다. “3·15 부정선거에 의한 4·19 혁명으로 인한 자유당 정권의 붕괴와 이어진 민주당 정권의 무능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도에 달하였으며 군의 정풍과 정군이 절실히 요구되었음. 당시의 모든 정세와 환경이 혁명이 생길 수 있는 요인을 유발함. 윤보선 대통령은 혁명 후 기자회견 시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말함.” “4·19 혁명 후 시위의 남발과 혼란으로 (중략) 퇴보와 좌절이 계속됨. 박정희 장군의 지휘하에 민족중흥과 근대화를 목표로 사회체제를 개혁함. 516 혁명은 민족 중흥과 근대화 혁명” 516쿠데타를 미화한 전시물 통로 옆에는 영상물 상영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5분여 동안 상영되는 ‘집권 18년6개월 동안의 기록’ 영상물은 비교적 지루하지 않게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집권시에 실행한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정책 등에 대해서만 다룰 뿐, 그의 집권기에 있었던 여러 부작용 등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집권 후반기 부마항쟁이 발생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의 독재가 심각했다거나 결국 그가 암살당했다는 내용은 살펴볼 수 없다. 영상만 보고 있으면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아버지’로만 기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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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맨 오른쪽)이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돌아보는 중에 한 관람객이 박 전 대통령 사진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박정희기념관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지원 약속 이후 국고 보조금이 회수되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이는 등 사회적 논란 끝에 13년 만인 이날 문을 열게 됐다. 공동취재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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