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인터뷰 / 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스타였다. 1993년
환경운동연합을 만들어 회원 7만명이 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키웠다. 비슷한 시기에 참여연대를 만든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그는 한국 시민운동의 상징과 같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검찰 수사를 받았다. 환경운동연합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충격은 컸다. 비슷한 무렵, 환경연합 활동가 2명이 1억여원의 공금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운동의 도덕성은 도마에 올랐다. 반대로, 검찰 수사가 시민사회 진영을 옥죄려는 정치적 표적수사라는 비판도 거셌다. 법원은 두차례나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결국 지난 1일 최 대표를 업무상 횡령·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제 검찰과 최 대표의 본격적인 법정 공방의 막이 오른다. 한쪽엔 검찰의 명예가, 또한쪽엔 한국 시민운동의 신뢰가 걸려 있다. 최 대표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두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검찰이 최 대표를 횡령 및 알선 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으로 법정에서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벌여야 할텐데, 심정이 어떤가.
“최열은 반드시 구속시키겠다,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겠다는 게 검찰 입장이고 이 정권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죄가 있든 없든, (검찰이) 그런 입장이라면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한 인간이 적어도 30년간 환경운동을 하며 살아온 삶을 권력이 왜곡시키려는 걸 막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구속되면 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제한된다. 그래서 불구속 기소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무죄 판결을 확신하나.
“내가 재판을 많이 받았다. 긴급조치 때, YWCA 위장 결혼 사건 때는 군사법정에 섰고, 낙선 운동, 탄핵 운동할 때도 벌금 냈고, 그 전에 집시법 위반도 있었다. 정치적인 사건이니 실정법에 의해 판단되는 건데, 그래서 형을 받았다는 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치적인 사건은 그래도 당당할 수 있는데,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것 같으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그것도 횡령과 알선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게 솔직히 더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서부 시대에도 등 뒤에선 권총을 쏘지 않았다. 이건(검찰 수사) 뒤에서 총 쏘는 것과 같다. 남한테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범죄를 저지르며 살지는 않았다는 건 국민들이 알 거라고 본다. 최선을 다하면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검찰 기소내용을 보면 혐의가 크게 세가지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삼성 계열사로부터 받은 기부금 3억원을 횡령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된 일인가.
“초기에 환경운동연합 건물을 조성하면서 자금이 모자라 내 돈을 환경련에 빌려줬다. 삼성 계열사의 기부금에서 이걸 돌려받은 것이다. 당시 환경련 회계자료에 이게 다 기록돼 있다. 다만 내가 돌려받은 돈을 같은 통장(삼성 쪽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통장)에 다시 넣었다. 당시엔 돈이 항상 부족하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빌려줘야 했기에 그렇게 했다. 즉, 환경운동연합 통장이지만 내가 받은 돈이 거기 들어가 있었던 거다.”
검찰은 등 뒤에서 총 쏘나대운하 반대자 표적 삼아500만원 빌린 사람까지 조사-그런 식으로 회계처리를 한 게 검찰 수사에 빌미를 준 거 아닌가.
“내가 당시 돈을 빌려주지 않았으면 그 집을 살 수 없었다. 그런데 검찰은 내가 돈 빌려준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걸 횡령으로 몰아갔다.”
-환경운동연합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고 했는데, 최 대표 개인 계좌로 그 돈이 옮겨졌으면 깨끗하지 않았겠나. 환경운동연합 계좌에 돈을 놔두고 필요할 때 몇 차례 꺼내 쓰는 식이니까 문제가 된 거 아닌가?
“환경운동연합은 봄, 가을에는 항상 돈이 부족했다. 한국 사회에선 회원 회비로만 절대 운영을 하지 못한다. 봄에는 음악회를 열고 가을에는 후원의 밤 행사를 해서 부족분을 메웠다. 수시로 돈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한 거다. 지금 와서 수사를 하니까 그렇지, 그때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고 해외로 다니는데 돈만 생각할 수 없었다. 1995년에 (빌려준 돈 받은 걸) 왜 개인 계좌로 안 넣었냐고 하는데, 그땐 수표로 주고받았지 계좌로 이체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나는 돈이 필요하면 내가 쓰고,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줬다. 빌려준 게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환경연합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잣대로 1990년대 시민운동의 활동을 재단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회계 관리가 매우 미흡했다는 걸로 볼 수 있다. 90년대부터의 허술한 회계 관리가 지난해 12월의 환경운동연합 실무자 공금유용 사건으로 이어진 거 아닌가.
“시민·환경단체 급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저임금이다. 회계 전문가를 고용하면 좋겠지만 한달에 60만~70만원을 주는데 회계 전문가가 오겠나. 결국 상근자들이 돌아가면서 회계관리를 했다. 90년대 중반은 시민운동이 막 시작할 때인데, 운동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돈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잘못한 거다. 비교적 깨끗했지만 그런 것까지 100%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운동을 줄이고 회계 관리만 하면 몰라도, 당장 석면사건이 터지고, 방사능에 식수 오염 사건이 터지는데, 현장으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민운동 단체도 종합적으로 모든 걸 균형있게 처리해야 한다는 걸 이번 사건을 통해 알았다. 잘못한 건 국민에게 사과하고, 지금까지의 시스템으로는 부족한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건 앞으로 활동을 통해 국민 평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3억원을 기부한 삼성 계열사는 최 대표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회사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있다.
“처음엔 삼성에서 계열사들이 조금씩 모아서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회사(최 대표가 사외이사를 맡은 회사)에서 열심히 환경 문제를 제기했으니 그쪽에서 주는 게 무난하지 않느냐고 해서 줬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삼성에서 계열사별로 조금씩 모아서 하는 게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주는 사람이 판단하는 거지, 내가 그 회사에 기부해달라고 한 건 아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 기업 사외이사를 맡는 게 문제된다고 보진 않는다. 사외이사는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시민 입장에서 투명하게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나는 들러리로 사외이사 한 게 아니다. 내가 환경운동가이기 때문에 (삼성이) 환경친화적인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내부에서 요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외이사를 맡았다.
-검찰이 먼지 터는 식으로 이것저것 최 대표에 관한 모든 걸 조사했다고 보나.
“그렇다. (몇몇 기업으로부터 받은) 장학금을 (사무실 임대보증금 등으로) 전용했다는 혐의는 처음엔 횡령이라고 했다가 전용으로 바뀌었다. (나에게 1억3천만원 빌려준) 오아무개씨를 조사하면서 검사가 “털면 나올 줄 알았다. 안나와서 미치겠다. 최열씨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하면 회사를 살려주겠다”고 했다고 하더라.”
-지난달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최열 죽이기 표적수사와 인권침해에 대한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어느 정도인가?
“내 사건을 수사한지 6개월이 넘었다.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부장검사까지 다 교체돼 다시 조사를 했는데, 나 때문에 조사받은 사람 중 확인된 사람만 해도 나 빼고 84명이다. 이건 굉장히 단순한 사건인데 84명을 조사했다. 10여년 전에 내게 돈 5백만원을 빌려줬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빌려줬는지 기억이 나겠나. 그런데 그걸 말하지 않으면 계좌를 다 뒤지겠다고 위협한다. 일일이 하나하나 증거를 대라고 하고, 어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하라는 건 맞지 않다.”
- 검찰이 표적수사를 벌인다면, 왜 최 대표가 표적이 됐다고 생각하나.
“내가 대운하 반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 때문일 거다. 내가 대운하 반대의 왕초로 한나라당에선 알고 있다고 한나라당 중진 의원이 말하더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대운하가 떠야 하는데 여론이 확 나빠지고, 결국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환경운동연합이 움직이질 않으니까 지금 4대강 개발 문제가 잘 이슈화되지 못한다. 실무자들의 잘못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지만, 국민이 환경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내용을 채워나가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정부, 시민단체 외면 안돼지원 뒤 평가 엄격히 해야자원봉사 위한 프로그램을-지난해 12월 환경운동연합 직원의 공금유용 사건은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에야 환경련에서 공개했다. 민주노총도 성폭력 사건을 언론보도 이후에야 공개를 했다. 시민사회 진영, 진보단체들이 내부 문제점을 먼저 공개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기보다는 숨기려 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게 시민들의 불신을 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난 환경운동연합 공금횡령 사건 때 엄격히 처리하라고 했다. 이 사건 터진 뒤 처리를 잘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징계를 하긴 했지만 절차가 늦었던 건 사실이다. 시민단체엔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이 사람들이 직업이 있다보니, 회의를 해도 시간이 걸려 (징계절차 같은 게) 처리가 잘 안된다. 그런 사건은 국민들에게 변명하지 말고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진보정권 시절에 시민사회 단체들은 적지 않게 기업 후원을 받았다. 정부 지원도 늘어났다. 시민사회 진영이 정권과 가까우니 기업들이 후원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은 거 아니냐고 국민들은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보나.
“그 문제를 선진국들은 잘 해결했다. 유럽은 시민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세금으로 정부기금을 조성했다. 지원한 다음엔 평가를 엄격하게 한다. 정부가 시민단체를 지원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회비로만 운영하라고 하면, 기업이나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단체는 점점 더 없어질 거다.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게 시민사회인데 그런 시민사회를 일정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시민단체보고 알아서 하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회원이 만 명이 넘는 단체가 어디 있나. 그나마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7~8만명이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은 2백만명, 미국 그린피스 회원은 65만명, 독일 분트가 35만명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1위, 12위인데도 (시민단체 규모가) 이렇게 처지는 건 정부가 시민단체에 대한 배려를 전혀 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이 시작된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시민 속에 뿌리 내린 시민운동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런가.
“우리나라는 국민 전체가 너무 바쁘다. 자기 시간이 있어야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다 바쁘니까 상근자만 자꾸 늘어난다. 스위스나 유럽에 가면 회원 5천명 당 상근자가 1명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그렇게 치면 상근자가 20명이어야 하는데 지금 250명이다. 10배가 많다. 유럽 시민단체는 하루씩 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운영되고 상근자는 이들을 코디네이터하는 역할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 바쁘니까, 상근자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자발적인 활동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검찰 수사가 최 대표에겐 삶을 한차례 정리하는 계기가 된 거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정치할 생각은 없나.
“살아오면서 변절한 사람들을 워낙 많이 봐서, 관에 못질할 때까지 (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숱한 정치참여 권유를 이겨내고 계속 운동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1996년엔)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에 불러 정치하라고 한시간반 동안 설득한 적도 있지만 거절했다. 어떤 때는 같은 지역구에 여야 모두 공천을 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 정치 할 사람은 따로 있고 나는 정치 안해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이다.
돈 때문에 아쉬워한 적 없고 권력에 선망 가진 적도 없다. 60년 동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왔는데 그걸 좀 더 절제되고, 좀더 모범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소홀히 한 건 반성하고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가용이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대개 2대씩 차가 있는데, 우리집은 한대도 없다. 광고 모델 제안도 여러 번 들어왔다. (페놀 사건으로) OB맥주 불매 운동했을 때 하이트 맥주에서 모델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최열’ 이름이 체어맨과 비슷해서 그런지, 체어맨 광고 제안도 들어왔다. 그런 거 일체 하지 않았다. 운동가가 상품화되면 안 된다.
인터뷰 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정리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