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씨가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복귀’ 신고를 하고 도로명 주소가 쓰인 스티커를 부착한 신분증을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씨가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복귀’ 신고를 하고 도로명 주소가 쓰인 스티커를 부착한 신분증을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인 반기문’이 13일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이튿날인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청년 지지자들과 오찬, 주민센터·은행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권력의지”를 강조하면서도 기성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청년’을 앞세우면서도 70대 시니어 정치인들과의 ‘빅텐트’를 구상하는 그의 행보를 두고 ‘반반 정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대한 중간지대를 끌어모아 세를 키우려는 전략이지만, 달리 보면 어떤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 묘역 참배박 대통령에 새해 인사 계획박 지지세력까지 흡수 전략“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 규정청년들과 취업·주거난 등 대화구체해법 없이 “노력하세요”

반 전 총장은 이날 아침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과 참전용사·순국선열 등의 묘역에 참배했다. 반 전 총장은 조만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도 방문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데 가장 핵심 역할을 한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참배와 추모메시지를 거부했다는 논란을 잠재우면서 동시에 자신이 강조하는 ‘국민 대통합’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힘써온 반 전 총장은 이날 “국가원수이시고 새해에 인사를 못 드렸으니 기회를 봐서 전화를 한 번 드리는 게 마땅치 않나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에게도 인사할 뜻을 밝혔다. 반 전 총장은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새마을운동을 긍정평가하는 등 박 대통령과 가까운 모습을 연출했으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등 비판적 태도를 보여왔다.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국가원수’라고 칭하며 연락하겠다고 나선 것 역시 ‘대통합’의 일환이지만, 또한 일부 박근혜 지지 세력까지 배제하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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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강조해온 반 전 총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반 전 총장을 지지하는 그룹의 젊은이들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김치찌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과 자녀 둘을 둔 ‘초보아빠’는 주거·출산·육아·교육환경의 어려움을, 대학생 사업가와 30대 자영업자는 열악한 창업 여건을, 대학생들은 취업난을 호소했다. 반 전 총장은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유엔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들어 “노력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반면, 반 전 총장 쪽이 ‘빅텐트’의 연대 대상으로 꼽고 있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은 모두 1940년대에 태어나 1960년대 대학을 다닌 70대다.

반 전 총장은 또 전날 귀국행 비행기에서 일부 언론과 벌인 인터뷰에서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했다. 보수적 가치를 중시한다면서도 “유엔에서 성소수자와 장애인·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했다. 각국에 사형을 유예하도록 권장하는 유엔의 결정도 내 임기 때 이뤄졌다”며 “진보와 보수를 다 아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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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보수성향에 가까운 반 전 총장이 외연 확장을 위해 ‘진보적 보수’란 표현을 썼다고 본다. 보수층을 다지지 않고서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완전히 멀리할 수는 없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정책과 인물경쟁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철 이경미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