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가 2017년 12월30일 공개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제5차 당 세포위원장 대회 축하공연 참석 장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장 건물 계단을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2017년 12월30일 공개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제5차 당 세포위원장 대회 축하공연 참석 장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장 건물 계단을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평창겨울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한 고위급 대표단 일원으로서 방남하는 것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의중을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할 ‘분신’으로 김 부부장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결과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7일 오후 북쪽이 통지문을 보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 단원으로 김 부부장과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3명이 방남할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삼아 ‘형식’적 완성을 기했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김 부부장을 통해 ‘내용’까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 보고 들은 것을 여과 없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김 위원장으로선 (김 부부장을 통해) 좀 더 현장감 있는 정보를 입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최고지도자 집안의 일원이 남쪽을 찾는 것은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김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줄곧 지근거리에서 보필해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쓸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카드로 평가할 수 있다.

광고

지난달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북한이 보여온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특히 1월9일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이어진 남북대화를 통해 각종 합의가 잇따르면서,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란 일회성 행보를 넘어 ‘평창 이후’까지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 부부장 방남 결정은 북한이 남북관계 복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셈”이라고 짚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에 시동을 건 데 이어, 이를 바탕으로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달은 한반도 긴장을 낮추기 위해 김 부부장 방남이란 ‘파격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얘기다. 남북관계에 밝은 전직 고위 당국자는 “이런 파격 행보는 역으로 북한 또한 한반도 정세의 긴박감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광고
광고

김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북 고위급 대표단은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에 이어 이튿날인 10일엔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을 할 가능성이 크다. 김 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매개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간접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부장이)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내려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쪽과) 대화를 나눌 때도 무게감 있는 이야기가 오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미 남북 사이에 일정한 의견교환이 이뤄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이 김 부부장 파견을 결정했다는 것은 남과 북 사이에 물밑에서 어느 정도 정세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이뤄졌음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혈육을 앞장세울 정도라면, 핵·미사일 문제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일정한 ‘전략적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광고

관건은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다. 한-미는 이미 연례 연합군사훈련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결정을 통해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북한도 지난해 11월29일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과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두달이 넘도록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있다. 북의 적극적 행보에 미국이 화답한다면, 북-미 대화로 가는 ‘기회의 공간’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

반면 정부는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핵·미사일 문제”라며 “이제 첫발을 떼는 셈인데, 첫 만남부터 (비핵화 문제 같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성연철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