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양국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합의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공약집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전날에 이어 24일 오전까지도 전작권 환수 공약 파기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다가 ‘침묵’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자, 오후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전작권 관련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내놨다.
민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전시작전권 전환은 그 어떤 경우에도 계획된 전환 시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공약의 철저한 이행보다는 국가 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대선 때 약속했던 전환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민 대변인은 이어 “대한민국이 전작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현재와 같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서 전작권 전환 준비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 대변인은 또 “현재 한미 양국은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미동맹의 대응 능력 구비 등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을 위한, 적절한 전환 조건과 시기 결정하기 위해 심도 깊게 논의 중이다. 안정적 전작권 전환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전면전과 국지 도발 억제하고 한미 연합 방위력 강화하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런 입장표명은 ‘안보 문제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니, 국민들이 이해를 해달라’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다. ‘국가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사전에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용산 및 동두천 기지 문제가 혼란에 휩싸이게 된 것에 대한 유감 표명 역시 없었다.
청와대가 공식 입장을 내기에 앞서 민 대변인은 아침 브리핑 때는 ‘전작권 환수 연기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고 전날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채택한 코뮈니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해서 읽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약 파기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민 대변인은 “입장은 어디에 물어보나 (양국이 채택한 코뮈니케 내용과) 똑같은 발표가 있을 것”, “덧붙일 말씀이 없다. 정리된 입장을 말씀드릴 게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