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경제계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지난 9월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경제계 의견을 모아 정부에 전달하는 일을 대한상의 대신 전경련이 주관한 것도 그 때문이래.” 최근 경제단체 직원들 사이의 대화 내용이다. 오는 21일 취임 3개월을 맞는 박용만(58) 신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제단체 역할=기업 이익 대변’이라는 공식을 깨는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 확대 계획을 내놓는 등 경제단체 역할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점에서, 박 회장이 몰고온 새바람이 경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박 회장은 국가경제를 고려하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기 힘들다는 소신을 펴왔다. 한국은 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인데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가장 싸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박종갑 상무도 19일 정부가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해 “국가경제 차원에서 에너지 가격 구조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대한상의 임직원들에게 기업과 기업인을 구분해서 대응하라고 강조한다. 기업인들이 잘못했는데도 무조건 편들지 말고, 전체 국민에게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주문이다. 지난 9월 말 에스케이(SK)그룹의 최태원 회장 형제가 배임횡령 사건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대한상의는 유감의 뜻이 담긴 논평(내지 코멘트)을 내려다가 그만뒀다. 재벌 총수들 모임인 전경련은 21명의 회장단 중 절반 가까이가 각종 불법 행위와 경영 실패로 인해 사실상 유고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경련은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박 회장은 이를 안타까워한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 “(나 같으면) 국민들 마음을 아프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대한상의가 정부의 재벌정책에 반대로 일관해온 전경련과 지금껏 같은 목소리를 내온 것에도 부정적이다. 대한상의 회원사의 97%는 중소기업이다. 재벌의 경제력 우위를 남용한 각종 불공정행위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사업영역 침범으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는 대다수 회원사의 이익에 반한다. 박 회장은 지난 8월 말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대한상의 역할에 대한 생각에서도 전임 회장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임 회장들은 기업 이익 대변을 앞세웠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것은 대한상의 설립 취지에 맞지 않고,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대한상의 근거법인 ‘상공회의소법’은 설립 목적을 “상공업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박 회장은 “단지 회원사의 의견만 좇아 반대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정부가 경제계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경제계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다. 박 회장은 “경제5단체가 입장을 발표하면, 정부가 대책회의를 하는 대신 ‘저 사람들 왜 또 저러느냐’는 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 회장은 취임 인사도 파격적이었다. 기업에 우호적인 곳만 찾지 않고, 비판적인 곳도 두루 방문했다. 정치권의 경우,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 심지어 기업에 가장 비판적인 소수 야당도 찾았다. 박 회장은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와 만난 뒤에는 “(심 대표는) 투사가 아니라 정치가다. 얘기가 통할 사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대한상의 주도로 경제5단체와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사상 처음으로 정책간담회를 한 것도 박 회장의 소통과 대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직원 관계에서도 딱딱한 격식을 깨고 있다. ‘타운홀미팅’처럼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자리를 만들어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밝혔다. 또 시급한 보고는 휴대전화 문자로 대신하라며 간부들에게 스마트폰을 나눠줬다. 두산그룹 3세인 박 회장은 평소 자신의 생각을 수시로 트위터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박 회장의 파격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젠 빠르게 적응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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