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
[이코노미21] 맞수들의 쩐전쟁 /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
두 천재 CEO의 흥망성쇄 ‘30년 전쟁’ … “너의 실패는 곧 나의 성공”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에 불만은 없다. 그들이 노력한 결과니까. 다만 3류 제품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 불만일 뿐이다.” (스티브잡스, 1996년 PBS 다큐멘터리) “스티브 잡스는 분명 성공한 CEO다. 자기 외엔 모두 ‘하수’라고 말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빌 게이츠, 1998년 <포춘> 인터뷰) <타임>지가 ‘세기의 라이벌’이라 부른 두 스타 CEO. 1955년생 동갑내기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앙숙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게이츠가 MS를 설립, 이듬해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내놓으면서부터다. 둘의 반목은 PC시장의 역사와 마찬가지인 셈이다.이들에게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이의 패배를 의미했다. 84년 잡스가 매킨토시로 대박을 터뜨리자, 게이츠는 위기에 빠졌다. 그로부터 11년 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방식을 흉내 낸 ‘윈도95’를 출시했다. ‘윈도95’로 도산 위기에 몰린 잡스는 30살 생일파티를 치르고 3개월 뒤 회사에서 쫓겨났다. “빌 게이츠가 내 아이디어를 훔쳐 성공했다”며 이를 갈던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잡스의 재기는 빌 게이츠의 자존심을 구겨놓았다. 이에 질세라 지난해 게이츠는 MP3 ‘준(Zune)’을 출시했다. ‘혁신의 귀재’ 잡스는 올해 휴대폰 ‘아이폰’으로 또 한 차례 돌풍을 일으켰다. 또 MS의 ‘익스플로러’에 대항하는 ‘사파리’를 잇따라 내놓으며 MS에 전면승부를 선언했다. 둘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낮과 밤처럼 다른 동갑내기 CEO ‘디지털 세계의 지배자’인 빌 게이츠와 ‘시대의 아이콘(우상)’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 이들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둘의 측근인 엔델그룹 롭 엔델 수석 애널리스트가 “두 사람은 마치 ‘낮’과 ‘밤’처럼 항상 다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정도다. <비즈니스위크>가 실리콘 밸리의 독보적 존재이자 ‘최상의 리플레이(replay)’라고 말한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돈이 없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동네 선배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다. 기술 우월주의와 독선으로 회사로부터 또 한 번 버려졌던 그는 사용자 중심의 기능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채 MP3,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창조 정신은 시장에서 먹혀들었다. 애플의 지난해 매출은 39% 오른 193억달러. 올 1분기에만 매출 52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순익도 작년보다 88%가량 증가한 7억7천만달러를 거뒀다. 주가도 1년 새 40%나 뛰었다. 2001년 9달러로 시작한 애플의 주가는 올 5월 현재 120달러가 됐다. MS보다 4배나 많은 액수다. 유복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수학과에 다니다 중퇴했다. 명석한 두뇌만큼 사업 수완도 특출났다. 돈만 된다면 모방도,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MS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평정했다. 올 1분기 MS의 실적은 144억달러, 순익만 49억3천만달러에 달한다. 1천원을 팔면 342원의 이익을 남길 정도로 여전히 잘 나간다. MS의 매출은 애플의 3배, 순익은 6배나 많다. 연 1달러를 받는 스티브 잡스와 달리 빌 게이츠는 매년 97만달러를 벌어들인다. 13년째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빌 게이츠의 재산은 560억달러. 세계 132위인 잡스(57억달러)보다 10배나 많은 액수다. 사회적 활동과 기부 면에서 보자면 단연 빌&멜린다 재단 회장인 빌 게이츠가 우세하다. 지난해 그는 오는 2008년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자선사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32년 만에 하버드대를 찾은 그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주장하며 “시장과 정부의 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도록 혜택 받은 사람들이 나서자”고 역설했다. 그는 컴퓨터, 인터넷 등의 기술혁명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타임>지는 “하버드대 재학 당시 ‘괴짜 빌1.0’과 경제거물로 성장한 ‘성숙한 빌2.0’간의 거리를 좁힌 연설이었다”며 그의 소명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게이츠의 사회공헌 활동은 ‘숙명의 라이벌’인 스티브 잡스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언론들은 “스티브 잡스는 감동 깊은 연설은 물건을 팔 때나 하고 정작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일엔 나서지 않는다”며 비아냥거렸다. <와이어드> 칼럼니스트 린더 카흐니도 “지난 30년간 스티브 잡스가 정치적 이슈에 동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거라곤 그가 밥 딜런의 팬이라는 사실 뿐이다”라고 힐난했다. USA재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스티브 잡스가 기부한 액수는 500만달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인생 역정과 사업 행보를 보인 두 사람을 두고 네티즌들 역시 극단으로 갈린다. 잡스를 추종하는 이들은 “우리 집 거실에 마이크로소프트사 제품은 절대 들여놓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MS팬들은 “잡스는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적인 사업가일 뿐, 빌 게이츠를 넘어설 수 없다”고 비난했다. 언론들은 한술 더 뜬다. ‘누가 천사고, 누가 악마인가(와이어드)’ ‘게이츠 vs 잡스, 반목의 역사(BBC)’ 등 이들이 등장한 기사엔 온통 ‘편 가르기’ 뿐이다. 둘을 소재로 한 TV영화도 나왔다. ‘게이츠-잡스, 실리콘 밸리의 해적’이란 영화는 그들의 대결구도를 드라마틱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 2월엔 UCC도 등장했다. “난 멋지지만 넌 불쌍한 늙은이야.” 게이츠를 쥐어박으며 통쾌하게 웃는 잡스의 손엔 아이폰 광선검이 들려있다. 공식석상에서 좀처럼 함께 하지 않던 두 사람이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주관한 컨퍼런스에서 만났다. 그간 이들의 만남은 극히 드물었다. 83년 애플 컴퓨터 행사장에서 한 번, 91년 <포춘>지 커버 촬영을 하며 마주한 것뿐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들은 30년간의 반목을 뒤로 하고 서로가 이룩한 성과를 칭찬했다. 이 날의 백미는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 대한 생각을 비틀즈의 노랫말을 빌려 표현한 대목이었다. “당신과 나는 우리 앞에 뻗은 길보다도 더 오랜 기억을 갖고 있소.(You and I have memories longer than the road that stretches out ahead)” 이 날, 이들과 함께 자리했던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월트 모스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세상의 수혜는 그들의 경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두 사람의 경쟁으로 삶이 풍요로워진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김은지 기자 guruej@economy21.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