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만난 이해성 연출가(왼쪽)와 김재엽 연출가. 이 연출가는 연극 <불량청년>을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만난 이해성 연출가(왼쪽)와 김재엽 연출가. 이 연출가는 연극 <불량청년>을

“해성 형은 정말 좋은 연출이지.”

“독립운동가 얘기래.”

“독립운동하듯 연극하는 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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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청년>이라…. 제목이 참 좋은 거 같다.”

극단 드림플레이 대표 김재엽이 쓰고 연출한 연극 <생각은 자유> 프롤로그 일부다. <생각은 자유>는 그가 베를린예술대학에 방문교수로 초청받아 독일에 다녀왔던 2015년을 전후하여 작가의 개인적 일화를 담은 연극이다. 극 초반, 그가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불쑥 연극 <불량청년>이 언급된다. 그의 아내 이소영은 연극배우로 <불량청년> 초연에 출연한 바 있다. 마침 <불량청년>이 공연 중인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로 김재엽 연출이 <불량청년>의 작·연출가인 이해성 연출을 찾아왔다. 이해성은 농 섞은 인사로 김재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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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예술인 검열 사태 맞서 ‘블랙텐트’ 운동 주도했던 두 사람 검열·난민·이주민 문제 등을 실험적 방식으로 무대에 올려

“제가 <생각은 자유>의 제일 큰 피해자입니다. 배우 세 명이 출연을 못하게 됐어요. 춘성이 형, 원조, 소영이. 캐스팅하려고 전화하니까, 다들 <생각은 자유>에 출연하게 돼서 <불량청년>에 출연 못한다는 거예요. 세 배우가 하던 역을 대체할 배우를 찾느라 고생했죠.”

연극 <생각은 자유>에는 <불량청년> 초연에 출연했던 배우 셋이 출연한다. 지춘성, 정원조, 이소영. 세 배우는 <불량청년> 초연 당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지춘성 분),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정원조 분), 의열단원 장규동(이소영)을 맡아 연기했다. 등장인물의 면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주된 내용은 역사의식이 희박한 청년 김상복이 물대포를 맞아 1921년에 불시착하고, 그곳에서 자신과 닮은 김상옥과 함께 의열단 활동을 하며 역사의식을 고취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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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상황이 달라져서 해석의 결이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물대포는 이명박 정권부터 사용한 거잖아요. 그런데 초연 때는 억지스럽다는 평이 있었어요. 하지만 작품이 초연되고 1년이 지나 백남기 어른이 돌아가셨고, 이후로 장면에 대한 부정적인 평이 사라진 것 같아요.”

<불량청년>. 극단 고래 제공
<불량청년>. 극단 고래 제공

재공연을 하면서 추가한 장면도 있다. 특히 작품을 여닫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불량청년>은 객석에 있던 취객 같은 이가 무대에 난입해 동전을 던지며 주정하듯 넋두리를 펼치면서 시작된다. 이는 지난겨울, 이해성 연출이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지키면서 겪었던 체험을 무대화한 장면이다.

“어떤 남자분이 공연이 바뀔 때마다 블랙텐트를 찾아오셨어요.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나오면 무대에 동전을 던지는 거예요. 마치 ‘백원 먹고 떨어져’라는 느낌으로. 그런데 그 모습이 짠하더라고요. 독재 시절에 20대를 보냈을 듯한 60대 어르신이었는데, 주역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자기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린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그 불만을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그분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유기체의 현 상태를 발견해서 작품에 삽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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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이해성은 108일 동안 광화문에서 동안거하며 한파와 전 정권, 그리고 무수한 사회적폐들과 싸웠다. 연극에는 이러한 그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사실 작가의 체험을 녹여낸 작품이라면 <생각은 자유>를 따를 만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부부간의 일상적 대화로 시작하듯, <생각은 자유>에서 김재엽은 자신이 일상에서 느낀 자전적 체험을 그대로 무대화한다. 그가 이 사적 담론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것은 묵직한 공적 화두들이다. 검열, 공공극장의 공공성 등 최근 예술계의 화두를 비롯해, 난민·이주민·공동체의 문제 등이 작품을 통해 거론된다. 그는 각각의 화두에 대한 독일의 사례와 현실을 병치해 놓으며 대위법적으로 문제를 부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세계시민, 이주민, 난민이다. “내 속엔 난민이자 이주민이자 세계시민이 동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극중 재엽의 대사처럼, 셋은 결국 하나다.

이러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다큐멘터리 연극, 혹은 버베이팀 연극이다. 둘은 허구와 실제의 벽을 허물려는 시도에서 발생한 연극 형식으로, 허구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양식의 연극을 의미한다. <생각은 자유>에서 김재엽은 주인공으로 ‘재엽’을 내세운다. 자기 자신인 셈이다. 그리고 ‘재엽’ 역으로는 그의 전작들에서 ‘재엽’을 연기했던 그의 페르소나 정원조가 출연한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실제 아내인 이소영이 ‘소영’으로 출연하여, 극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힌다.

<생각은 자유>. 두산아트센터 제공
<생각은 자유>. 두산아트센터 제공

“저도 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회적인 이야기를 소재로만 취해서 작품을 만드는 게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솔직하게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을 등장시키는 다큐를 썼는데, 내 인생의 한계가 작품의 한계로 드러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만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 형식을 계속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이러한 형식은 전작인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비롯해, 그가 최근 몇 년 지속적으로 실험해온 방식이다. 이는 기사와 기록과 채록을 이용하는 형식으로 기승전결의 플롯을 중시하는 전통적 극작술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처럼 서로 형식은 달리하나, 사회적 의제를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면에서 이해성과 김재엽 두 사람은 공동의 지향점을 갖는다. 나아가 두 사람은 공연계 최전방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다.

마침 인터뷰를 진행했던 지난달 30일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 이뤄졌던 날이다. 일련의 검열사태를 겪으며 도 후보자와 함께 행동해온 터라 그 기대감이 남다를 것이다. 후보자 지명을 두고 이해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으면서 행정 관료는 예술의 취지나 본질을 정말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점에서 예술가가 문화부 장관이 된다는 점은 고무적이죠. 혹시 행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차관급에서 보충해주면 될 것 같고요. 도종환 의원님은 예술의 가치와 사회적 공공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계신 분이라 잘할 거라고 믿어요.”

김재엽이 말을 받았다.

“도종환 의원님 같은 분이 문화부 장관을 하셔야만 비판적 지지자들이 마음을 놓고 기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재 정치권에서 예술계와 소통할 수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검열사태 때 의원 중에 제일 먼저 나섰던 분이고, 실제로 본인이 이명박 정권 때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분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더해 민과 관으로 구성된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문화계 내 ‘적폐’를 철저하게 조사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등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의견도 개진했다. 인터뷰는 두 사람의 작품 이야기 대신 문화계 당면 과제들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작품이 곧 운동이고, 운동이 다시 작품 아니겠나.

이해성의 연극 <불량청년>은 30스튜디오에서 11일까지 공연된 뒤, 서울 자양동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17일부터 25일까지 공연된다. 김재엽의 연극 <생각은 자유>는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17일까지 공연된다.

김일송/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