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국내에선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막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가로막히고,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형사처벌을 여군에게까지 확대하는 쪽으로 군 형법 개정이 추진되는 등 성 소수자의 권리가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 사무총장이 한국의 성소수자 상황을 처음으로 직접 언급해 주목된다.

반 사무총장은 30일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때문에 폭력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느 곳에나 있다. 저의 모국,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대개 금기시되고 있다. 아직도 성인인 동성간의 합의된 사적인 관계가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걱정된다”고 밝혔다.

반 사무총장은 국제기구 유네스코가 펴낸 책 <동성애 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교육정책>(가제)의 한국어판 발간을 앞두고 이 책을 번역한 성소수자 단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 보낸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유네스코가 세계 25개국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지난해 5월16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해 발간한 것으로, 동성애자도 차별없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세계 각지의 모범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이 글에서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문제의 한 부분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이슈”라고 적었다. 그는 “안전해야 할 학교나 교육기관에서마저 학생들과 교사들이 동성애 혐오로 인한 폭력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인류 가족의 구성원인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모든 청소년을 위해, 학교를 더욱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반 사무총장은 앞서 지난 1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인권·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성소수자들을 향한) 비난과 공격을 밝혀낼 것이고 세계 정상들에게 차별 금지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오김현주 활동가는 “반 사무총장의 메시지는 최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철회와 군 형법 개정 논란 등 국내 성소수자 인권 상황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로 읽힌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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